천재동

천재동

무극인 2007. 11. 11. 14:14

증곡 천재동(曾谷 千在東)은 일생을 올곧고 열정적으로 민족예술과 함께

 외길 삶을 사시다 가신 참 예술인 이다.

  

 

  우리들은 천재동씨에게서 그 힘겨운 일의 성취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전문적 미술작가인데다 탈놀이 부분의

중요문화재 18호인〈동래들놀이〉를 비롯한 여러 민속 연희의 전승자이자 연구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먼저 우리들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증해 줄 것이다.

 투박하나 말쑥하고 이지러졌으나 야멸찬 그리고 소박하나 사연이 많은 천재동씨의 탈이 두 번에 걸쳐

지방전시회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서울 무대에서 춤꾼도 없이, 발림이나 사설,

장단도 없이

 혼자 제 흥에 겨워 절로 노니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신명나는 일이다. 

 1978. 5   김열규(민속학 교수)

                                                                         

증곡 천재동(1960년대)

천재동 선생님의 창작탈과 토우에서 우리는 선생님이 혹시 탈의 세계에서 만신이 아닐까하고 해서 머리가 절로 숙으려진다. 이러한 애틋한 마음은 잊혀진 듯 애잔한 듯 동요풍속화집 `달노래 별노래 새노래`(1998년 도서출판 시로)로도묶어졌다. 이러한 동심은 순수무구한 것, 생명 근원적인 것과 통하여 이윽고 노경老境 의 무심無心의 세계에 다다른다.

그러나 선생님의 체취는 서민적인 삶의 정서에서 뿌려진다. 이는 기층을 토대로 민족적인 것을 추구하고 그것으로 삶의 기저를 탐색하는데 서 온 것이다. 그러기에 탈과 토우의 페르소나 속에 인간의 희노애락 감정이 잠겨있고 `속울음 겉웃음`의 탈이 실제 삶의 한가운데서 울음 끝의 웃음으로 다가온다. 삶과 탈이 하나이니 그것은 마침내는 질박한 한국적 원초성의 원형이다.

채희완(미학교수 2007. 5) 

   

 

 증곡 천재동(2000년 )

 

 

                             생전 김춘수(1922~2004) 시인은 이런 시를 쓴 적이 있다.

     

                                                                      -   절대로 절대로  -                                         

                                                   큰 바가지는 엎어져서/엉둥이를 하늘을 보고 있다

                                                   작은 바가지는 나동그라져서/배때지가 하늘을 보고 있다

                                                   밝은 날도 흐린 날도/큰 바가지는 엎어져서 엉둥이가 웃고 있다

                                                   작은 바가지는 나동그라져서 배때지가 웃고 있다.

                                                  千在東의 바가지가 그렇듯이/밝은 날도 흐린 날도

                                                  큰 바가지는 눈이 엉둥이에 가있고/작은 바가지는 눈이 배때지에 가있고

                                                  큰 바가지는 엉둥이로 웃고/작은 바가지는 배때지로 웃고 있다

                                                  千在東의 바가지가 그렇듯이/밝은 날도 흐린 날도

                                                  절대로 절대로 울지 않는다.


                                                                    ―   비쭈기 나무  ―

                                                  비쭈기 나무 귀 너머

                                                  影島(영도) 앞 바다

                                                  釜山(부산)에서

                                                  천재동씨가 보내온 낭자 탈에는 마마 자국이 희미하다

                                                  마주보면 오늘밤은

                                                  아내의 눈에

                                                  銀河水(은하수) 의 별 하나 흐르고 있다. 

 

 

손자 창환이 고교 3년때 그린 `나의 할아버지` 

 

우리 문화에 대한  사랑이 참으로 깊고 늘 그것을 전하시는데 성실하셨던 선생님의 모든 작업들이 지금 다시 생각해 보면

 새삼스럽게 소중하고 감사한 마음이 솟구친다.

이제 너그럽고 품위있게 늙어 가신 선생님과 사모님을 뵈니 참 아름답기도 하고 한편 그 때 보다  굽어지신 허리를 보니 마음이 스산하기도 하다.

 지금이라도 선생님의 삶과 작업을 정리하여 남기는 일이 진행되어서 너무나도 다행스럽다.

그 동안 하신 모든 것들은 선생님의 작업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재산인 것이다.

박재동(만화가,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2007. 5) 

 

증곡 천재동(2000년)

 

 

천재동씨는 탈 제작 분야의 독보적인 작가이다.

증곡은 그 동안 한국의 재래 탈들에서 힌트를 얻어 무수한 민족적 가면을 창작해 왔다. 한때는 토우형태의 테라코타 소품에도 열중한바 있으며

개중에는 외국인과 혹은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을 통해 구미歐美까지 적지 않게 흩어져 나갔다. 이것들이 어찌 창작품이 아니고 무었이랴.

현대의 이른바 순수미술을 주창하는 작가들 중에는 바가지탈이나 조그만 토우土偶들에  대하여 짐짓 부정적인 견해를 펼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그렇다면 옹졸한 자기비하自己卑下의 편견이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증곡의 작업은 일제日帝에서 싹튼 것도, 서구西歐에서 이식해온 것도 아니며

우리의 오랜 역사에 뿌리내리고 있는

한국미韓國美의 뚜렸한 한 부분인 것이다.  

이종석(문화재 전문위원 1980. 2)

 

증곡 천재동(1985년) 

 

 

 

 

 

청년시절 친구들과(가운데)   


                                                   건국청년단 경남대표로 서울행사에 참가 기념

 

 

 동경 가와바다화학교(川端畵學校) 조교시절(1939년)

 

 

 

 

 

 [문화칼럼] 증곡 어른이 남기고 가신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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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두(언론인)
언론인 이진두 이미지 검색결과


증곡(曾谷) 천재동(千在東) 어른이 타계하셨다. 그분이 그립고 떠난 자리가 휑하니 찬바람이 느껴진다. 큰 인물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으레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증곡 어른의 타계가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하는 것은 그분이 90 평생 '우리 것'을 찾고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힘써 오셨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증곡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탈 장인이시다. 동래들놀음이라고도 하는 우리 민속놀이에 쓰이는 탈을 제작하는 기능보유자이시다. 이 놀이에는 양반, 말뚝이, 영노, 할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이 얼굴에 쓰고 나오는 탈을 증곡 어른이 만드셨다.

동래 금강공원 안에는 부산민속보존회가 있고 놀이마당이 있다. 보존회의 놀이마당에서는 연중 민속놀이 판을 벌인다. 동래야류, 동래학춤, 수영농청놀이 등 신명난 판이 열린다. 상시공연 이외에 해마다 한 번씩 정기발표회를 열 때면 증곡 어른이 꼭 참석하신다. 그 대회에는 각 종목이 연희되고 또한 중·고교 전수학교의 전수생들이 그동안 연마한 기량을 선보인다. 어른이 좌정하시면 기성 연희자와 전수생들은 긴장감과 평안함을 동시에 품게 된다. 긴장감은 선생의 예리한 눈을 의식해서이고 평안함은 내 허점을 큰 부끄러움 없이 지적받을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더 큰 수확은 증곡 어른의 실연을 보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고 관대하신 증곡 어른이 계시기에 놀이마당에서의 한판은 연희자나 관객이나 한데 얼려 덩더실 어깨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어른을 뵐 수 없게 됐다. 그분의 모습도, 그분의 음성도 듣지 못하게 됐다. 그러니 더욱 그립고 떠난 자리가 썰렁하다.

우리는 흔히 가신 어른의 영전에서 유지를 받들어 모시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돌아서서는 그 다짐을 잊기도 잘한다. 선생이 가신 지금 그 다양한 성격의 탈은 누가 만들려는가. 토우 제작은 누가 이을 것인가. 그 어른이 평생 수집한 전래동요와 그 노래에 맞춘 민속화는 누가 그릴 것인가. 오줌싸개가 바가지를 들고 소금을 얻으러 가면서 키를 머리에 쓰고 우거지상을 한 토우는 웃음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더 우스운 건 오줌싸개의 아랫도리는 바지가 벗겨져 있고 가랑이 사이엔 작은 고추가 달랑 달려 있다. 증곡 어른은 그런 토우를 손에 들고 허허 웃으셨다. 이제 그 웃음은 어디에 퍼져 있을까.

80년대 대청동 고갯마루 대청예식장 건물 한쪽에 창고라 부르는 게 좋을 듯한 당신의 작업실이 있었다. 온갖 인물상을 재현한 탈을 여기저기 흐트려 놓고 탈바가지 하나 들고 앉아 마무리작업에 몰입해 있던 당신은 바로 또 하나의 커다란 탈바가지였다. 작은 탈 가운데 턱 버티고 앉은 크고 우람한 탈. 당신은 그렇게 우리 것을 가꾸고 지키는 큰 바위이셨다.

그 어른이 떠나신 이 자리, 당신이 지키신 우리 것, 우리 정신은 이제 남은 우리들이 더 찾고 더 가꾸고 더 잘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글로벌시대라 하여 우리 옛것에 대한 관심은 옅어지고 멀어져만 간다. 세월은 변한다. 시절도 따라 변하니 그 세월 그 시절에 맞추려고 사람들도 변해간다. 변하는 시절에 맞추어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지고 밀려서 세계의 흐름에,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해 낙오자가 된다고들 한다. 우리는 지금 전통을 지키면서 새 시대에도 맞추어가는 두 개의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간다.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것은 많다. 그 많은 것들은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배어있는 민속이요 문화유산이다. 이들은 세계 어느 나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이다. 증곡 어른의 작품들, 당신이 찾고 모으고 만들고 보존하여 지금 우리에게 남기신 것을 보자. 거기서 우리는 여유와 웃음과 함께하기를 본다. 그리고 서로 감싸고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이를 잘 지니고 가꿀 일이다. 내 것을 내가 챙기지 않고 남의 것만 바라보며 사는 게 글로벌시대의 삶은 아니잖은가. 증곡 어른의 유지를 받든다는 것, 그건 바로 우리 것의 전승 보존이 아니겠는가.

 / 입력시간: 2007. 07.3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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