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신문 1997년 8월 28일 목요일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
추/억/의 그 곳 ⑰ 주막 「대학촌」 〔천 〔재 〔동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주저없이 「추억 」을 말하겠다. 세상에 나온 지 여든 해가 넘었지만 동지들 즉 예술활동가들과의 우정이 가장 기억에 남으며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가족들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어찌보면 남자들 세계에 있는 우정이랄 수도 있다.
나는 한 평생을 연극과 그림, 탈조각예술 등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를 하고 있지만 60, 70년대 광복동 입구에 있던 「대학촌」시절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부산에서 대학촌을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유명했는데 오히려 서울 마산 등 타 지방 사람들에게 더 알려진 사교의 장이었다.
지금은 대부분 고인이 되었지만 화가 시인 소설가 사진작가 음악가 무용가 조각가 신문기자 등 부산지방에서 문화예술계의 밥을 먹던 사람이라면 이 주막에서 술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없었다고 필자는 감히 장담 할 정도다.
화가 임호, 이석우, 소설가 향파 이주홍, 요산 김정한, 시인 최계락, 바이올리스트 김학성,무용가 김향촌, 사진작가 허종배 선생 등도 이곳에서 수많은 흔적을 남기고 술잔을 기울였다.
전화 보급이 많이 되지 않던 시절이라 누구를 만날 일이 있으면 모두들 이곳에 달려왔다. 원고 청탁을 하려는 기자들도 타 지방에서 내려온 예술가들도 한수 배우려는 예술가지망생들도 이곳에 와 몇 시간씩 기다리곤 했다.
주인은 백씨성을 가진 사람이었는데 지금 여든 가까이 되었을 텐데 아직 정확한 생사는 모른다. 이곳이 사랑방 구실을 한 이유는 시내에 위치해 있었다는 장점과 술값이 저렴했다는 이유 그리고 주인이 후덕했다는 것 때문이었다.
막걸리에다 안주는 피문어 오징어 명태새끼 뿐이었으며 안주를 시키지 않고 탁자위에 있는 소금으로 대신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이었다. 그 당시는 그만큼 넉넉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흉내내지 못할 낭만과 정이 있었던 것이다.
1층 홀엔 탁자가 3개 있었고 2층은 살림방이었으나 특별한 경우는 손님을 위해 방을 제공하기도 했다. 예를 들어 그림을 그리는 누구가 그림을 한 점 팔아 돈이 생겨 그날 술을 한잔 산다고 하면 2층 방에서 거나하게 막걸리 판을 벌이곤 했던 겄이다.
필자 역시 매일 출입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이었다. 필자가 이 집을 추억의 장소로 생각하는 또 다른 이유는 재미있는 일이 한 번 있었기 때문이다. 30년 쯤 되었을 게다. 주인 백씨가 남자의 성기를 닮은 수석을 한 점 가지고 있었는데 공교롭게도 화가 임호씨는 여성의 그것을 닮은 수석을 한 점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두 사람 모두 수석 두 점을 한 군데 합쳐야 한다는 생각은 했으면서도 서로 상대방의 수석이 자기에게 올 것을 요구하였다.
그러던 날 하루는 임호씨가 술을 한 잔 받아주면서 필자에게 백씨의 남자수석이 자신의 여자수석에게 장가를 오도록 수를 좀 써 달라고 부탁을 한 것이다. 그래서 하루는 오후 3시쯤에 임호씨가 백씨와 필자를 자신의 영도 남항동 집으로 초청해 술을 한 잔 먹었다. 술이 얼큰해지자 필자는 넌지시 두 수석이 떨어져 있어 외로우니 한 곳으로 합해 결혼을 시켜주자고 제의를 했다. 백씨도 그러자고 해 필자는 사람의 경우는 여자가 남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상례이나 두 돌의 경우는 반드시 그렇지 않은 느낌이 든다며 주례인 자신에게 맡겨 달라고 했다 그래서 필자는 『백(주인 백씨)과 천(필자)이 합해야 숲(임호)을 이루므로 남자돌이 여자돌 집으로 데릴사위로 가는게 옳다』고 해 화가 임호의 여자돌에게 백씨의 남자돌이 넘어가도록 주례를 선 기억이 늘 기분좋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물론 악의가 있는 주례는 아니었고 어찌 생각하면 백씨도 처음부터 그런 의도를 알면서도 넘겨주는 그런 낭만이 있었던 것이다.
주머니에 동전 한 푼 없어도 간이역처럼 따뜻했고 인간적인 만남이 있었던 막걸리 집「대학촌」지금도 가끔 그 언저리를 지날 땐 당시의 기억들이 가슴을 적셔 발걸음을 무겁게 한다. 하룻저녁만이라도 그때로 돌아가 그런 아름다운 시간들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크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기능보유자 탈예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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