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일보
[밀물썰물] 천재동
/ 박창호 수석논설위원
입력 : 2007-06-15 01:16:24수정 : 2009-01-11 11:59:44게재 : 1970-01-01 00:00:00 (30면) 페이스북 트위터
'오랑께롱 간께롱/정지 문앞 간께롱/누룽지를 준께롱/묵은께롱 꼬신께롱/또 줄랑께롱 안준께롱/운께롱 준께롱/묵은께롱 꼬신께롱'
주전부리할 게 없던 시절, 부엌 문 앞에서 칭얼대는 코흘리개는 우리들의 어릴 적 모습이다. 누룽지를 얻어먹고 있는 토우(土偶:흙인형) 옆에 있는 작은 돌멩이에 이 노래가 씌어있다. 통통 튀는 리듬과 깜찍한 발상에 웃음이 절로 난다.
1970년대 초 증곡(曾谷) 천재동 선생 자택에서 이 같은 토우와 노래를 본 만화가 박재동은 "선생이 얼마나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지 가슴이 저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토우에 몰입했던 증곡은 1965년 10월 부산일보 프레스홀에서 동래야류 공연을 본 뒤 '바가지 탈'에 빠졌다. 25년간의 교원생활도 접고 오로지 탈에 예술혼을 불어넣었다.
"말뚝이 코는 팔뚝만하고 한쪽에 2개씩 난 콧구멍은 하얗게 채색돼 남자 양물을 상징하지. 반월형의 입, 빨간 입술, 이는 좌우가 달라 양반들의 '이중감정'을 표현한 것이야…."
동래야류에서 양반의 못된 행실을 질타하는 말뚝이 탈 재현에 10년이 걸렸다. 1930년대에 말뚝이 역을 맡은 곽상훈 전 국회의장의 고증을 받았고 국립중앙박물관 창고에서 1930년대에 만든 말뚝이 탈을 찾아내 원형을 재현했다. 말뚝이 탈뿐이 아니다. '동래야류 길놀이 행렬 순도''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공 군사행렬도'를 도해화(圖解畵)하고 동래지신밟기, 동래학춤 등 민속의 전승발전에 쏟은 증곡의 열정은 감탄스러울 정도다.
중요무형문화재 18호 증곡은 최근 '아흔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라는 회고록을 발간했다. 올해 92세로 백수를 바라보는 그의 왕성한 의욕은 후학들의 귀감이다. 마침 오늘 오후 6시 크라운호텔에서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우리는 평소 원로 예술가에 대해 어떤 예우를 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
박창호수석논설위원 p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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