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의 장인 서진문

순국선열의 날 추모제(2018.11.17)

무극인 2020. 5. 18. 02:35

추모주를 올리는 외손자 천영베

   

추모사

 

 서진문 선생님! 선생님의 영전 앞에 지역의 후배들이 모여 추모식을 갖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서거하신지 어느새 90, 조국이 해방된 것도 73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 모인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28세 꽃다운 나이, 민족과 민중의 진정한 해방을 위하여 한 몸을 내던졌던 숭고한 뜻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일신의 영달을 멀리하고 늘 낮은 곳에서 동포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항일이라는 비수를 품고 조선인노동자들을 이끄는 맹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선생님이 품었던 조국해방의 의로운 뜻은 제국주의의 야욕의 원천이었던 일왕 히로히토가 즉위하기 직전 체포되면서 안타깝게 꺾였지만 90년이 지난 지금도 후대에 존경받을 풍모를 보여주셨습니다.

 

 선생님은 요코하마의 경찰서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는 동안 단식으로 항거하셨습니다, 빈사 상태에서 풀려나 하루 만에 결국 몸을 추스르지 못한 채 비통하게 조선독립만세를 외치고 서거하시자 얼마나 많은 조선인들이 함께 슬퍼했습니까. 많은 일본인들마저 함께 놀라고 장례에 참가해 추모 할 만큼 선생의 뜻은 높고도 높았습니다. 그 뒤 해를 넘겨 고향 울산으로 돌아와 이곳 일산의 낮은 봉우리의 언덕에 영면하실 때도 애절하고 분노한 동포들의 행렬이 길게 늘어섰지 않습니까.

 

 선생님의 공적을 대한민국이 뒤 늦게나마 인정했고, 2006년 광복절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한 것은 늦게나마 죄스러움을 더는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지금은 철마다 동구 주민뿐 아니라 울산의 시민들 그리고 노동자들이 이곳을 찾아와 선생님의 높은 뜻을 기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항일, 독립운동에 나섰던 선생님의 동지들 중 많은 분들이 미 서훈 돼 명예를 미처 회복하지 못했고, 그 분들의 흔적과 기록 역시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제 몸을 던져 독립운동에 나섰던 순국선열을 기억하고 존중을 다하는 것은 저희들의 중요한 책무이기에 저희는 더 큰 책임감을 갖습니다. 그것은 선생님이 돌아가셨던 90년 전의 아픈 역사를 되풀이 않는 것, 나라가 외세에 짓밟히지 않고 나라의 백성들이 억압받고 수탈당하지 않는 세상을 만들기 위함입니다.

 

 서진문 선생님, 저희는 먼 세상을 떠나신 선생님의 뜻을 90주기인 오늘 뿐 아니라 계속 기억하고 되새기겠습니다. 제국주의 총칼로 지배한 엄혹한 시기에도 굴종하지 않고 두려움 없이 나섰던 그 정신을 본받겠습니다, 해방을 위해, 독립을 위해 흘리신 그 피가 헛되지 않도록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저희들이 제 몫을 다하겠습니다.

 

                                                        20181117

 

                               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님 서거 90주기 추모제 참가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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