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 그대로 해!'
연구생은 A, B 두 반으로 나누었는데 나는 A반에 속했다.
동경일대(東京日大) 예술과 출신인 허집(許執)이 반장을 맡았다.
당시 연극에서는 사투리 사용은 절대 금했기 때문에
나는 배우 되기를 단념하고 무대미술과 연출에 힘을 기울였다.
연구생 중 평양 출신 하나, 충청도 하나, 경상도의 나, 이 세 사람 외에는 모두 경기도 출신이라 했다.
수료식을 앞두고 시연회(試演會)준비에 한참이었다.
A반은 연제가『전설(傳說)』이였고, B반은 번역극(翻譯劇) 『암상(暗箱)』이었는데,
우리 A반은 주영섭(朱永燮) 선생의 연출로 연습을 하였다.
다음과 같은 내용의 연습 중, 즉 어느 산골짝에 강물이 흐르는데,
가난한 소년 뱃사공이 산골 사람들을 건너 주는 대가로 곡식을 얻어 생활하던 중에,
어느 날 서울 사람으로부터 배 삯 10전짜리 돈 한 닢을 받았다.
소년 사공은 생전 처음으로 보는 조그마한 은전을 손에 쥐고
집으로 달려가 “어매 돈!” 하면서 어머니와의 주고받는 대화 장면이 뜻대로 되지를 않아,
연출 선생은 휴식을 선언하고 쉬는 동안에,
내가 나서서, 모자(母역―유계선, 子역―허집)두 분의 양해 밑에,
그 잘 되지 않은 장면을 내 나름대로 연출을 시도 했던 것이다.
먼저 극중 인물의 성격과 분장 등을 칠판에 그림으로 그려 설명하고 난 연후에
연출에 들어갔다.
연구생들은 물론 정배우(正俳優)인 유계선 선생도 참 잘 한다며 과찬하는 가운데
한참 열을 내어 연습을 반복하고 있을 때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졌다.
“누가 하라 했어!” 놀라서 돌아보니 연출가 주(朱) 선생이다.
모두가 꼼짝 못하고 움츠렸다. “제가 했습니다.” 하였더니
“이 자식!”하면서 똘똘 말아 쥔 대본으로 나를 칠 듯이 팔을 높이 들었지만 치지 않았다.
한참 만에 팔을 내리면서 “좋아, 그대로 해!” 하는 것이 아닌가,
모두가 박수와 환성을 올렸다.
그 후로 연구생들이 나를 부를 때는 “좋아, 그대로 해!”라 했고,
기쁜 일이나 좋은 일이 있을 때도 구호처럼 외쳤다.
내가 국민극 연구소에 남겨둔 것은 내가 고안(考案)한 뺏지와 “좋아, 그대로 해! ” 이 두 가지다.
시연회는 종로2가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성대히 개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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