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제일일보
- 승인 2023.04.25 2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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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은 슬도를 걷고 방어진 활어센터 앞에서 ‘천재동 예술쉼터’를 만난다. “가자 가자 장에 가자/ 개기 사로 장에 가자” 토우 조형물이 눈길을 끈다. 엄마와 아이가 머리에 생선을 이고 장에 가는 우리들의 옛 모습에서 깊숙이 묻어 두었던 대화들이 오고 간다. 마음속에 있는 것을 풀어놓을 수 있는 공간이 있다는 것은 서로를 깊이 공유할 수 있는 장소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쉼터에서 해학적인 작품들 앞에 발길을 멈추었다. 담장 공간에는 달, 별, 새의 동시도 있다. ‘산 - 백산아 백산아/ 너 밥그릇하고/ 내 밥그릇하고/ 바꾸-자.’ 네 문장의 시 속에서도 우린 공유하는 것이 있다. 시에 담긴 해학적 글을 읽으며 여유를 느낀다.
봄꽃 노래에는 나란히 어깨동무한 토우(土偶)가 서 있다. 부엉이 노래, 거미 노래, 게 노래, 잠자리 노래, 낙지 노래와 개구쟁이들의 모습에서 절로 미소가 번진다. 길 건너 한쪽 벽면의 탈 6점- ‘장수할<수>탈, 동래<말뚝이>탈, 즐거울<희>탈, 귀할<귀>탈, 복<복>탈, 완고할<완>탈’의 표정들에서 그들의 삶을 훔쳐본다.
작품이 많지는 않아도 토우, 동시, 노래, 탈을 보면 그 창의적 발상이 감탄을 자아낸다. 억압에서 벗어나고픈 증곡의 마음은 아니었는지, 어깨동무하며 함께 나아가자고 힘을 보태었을 작품들이다. 지인은 증곡이 울산이 아닌 부산의 인물로 기억하고 있었는데 오늘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며 “예인(藝人) 증곡이 울산의 인물임에도 부각되지 않는 이유가 궁금하다”고 했다.
증곡(曾谷) 천재동(千在東) 선생은 1915년 1월 15일 울산 동구 방어진에서 태어났다. 남목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1931년 열여섯 나이에 울산 최초의 아동자작극 <부대장>을 무대에 올렸다. 1943년 일본 동경 가와바다화학교 특설 인체과를 중퇴했고, 1941년 극단 현대극장 주관 ‘국민극 연구소’ 과정을 수료한 뒤 일본 동경 동보계극장에서 ‘유락좌’를 연출했다.
1943년 28세에 일본에서 조선으로 돌아와 정구와 야구 선수로 활약했고, 1945년에 읍사무소 서기로 근무했으며, 1971년에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기능보유자’(인간문화재)로 지정됐다. 동래야류요, 지신밟기, 길놀이, 동래학춤, 가면극 등 부산 동래지방의 민속놀이 발굴·보존·발전에 평생을 바쳤다. 전래동요 400수를 담은 시화집 <달노래 별노래 새노래>를 펴냈고, 회고록 『아흔 고개를 넘으니 할일이 더 많구나』를 남기고 2007년 92세에 세상을 떠났다.
증곡은 방어진초등학교 교사로 부임해 현재의 방어진방파제 앞, 당시 방어진철공조선소에서 항일(抗日)연극을 선보였다. 최초의 아동극 <부대장>을 무대에 올렸고, 한국최초의 일본군 위안부 작품 <남매의 비극>도 썼다. 연극 <박제인간>에서 가면으로 악역 배우를 보호하는 한편 연극에서 극중 인물의 역할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안면 분장 대신 탈을 만들어 사용했다. 독립된 하나하나의 얼굴에 인간의 내심을 드러내 표현함으로써 독창적인 탈 예술의 한 장르로 승화시켰다. 한국최초로 가면전시회에 이어 창작토우 전시회도 열었다. 흙으로 빚은 창작 인형 토우는 우리 것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켜야겠다는 증곡의 마음이 묻어나는 듯하다.
증곡의 작품은 그저 보고만 있어도 편안함과 해학이 넘쳐난다. 뛰어난 창의력의 예술가였음에도 그의 업적을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인지? 이젠 예인 증곡을 위해 울산이 발 벗고 나서야 할 때가 아닌지? 울산에 문화 콘텐츠가 없는 것이 아니고 그런 콘텐츠를 활용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지?…
“울산에 이렇게 훌륭한 소재가 있는데 왜 발굴하지 않는지 궁금하다.” 방어진을 함께 돌아본 지인의 말이 귓전을 떠나지 않는다. 행정기관이 늘 뒷북만 치면서 다른 지역 것을 모방하거나 빼앗기기도 하는 것을 볼 때면 안타까움이 앞선다.
방어진항 거점시설 조성을 위한 ‘2021년 방어진 도시재생사업’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 관광과 문화가 공존해야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될 것이다. 증곡은 ‘울산 문화예술인의 효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업적을 남긴 증곡. 그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주는 공간이 지금이라도 마련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김뱅상 시인, 현대중공업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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