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에 대한 신문기사

'말뚝이는 절대로 울지 않는다'

무극인 2022. 12. 12. 22:14

부산일보

'말뚝이는 절대로 울지 않는다'

입력 : 1970-01-01 09:00:00  수정 : 2009-01-11 20:34:15

동래야류 탈 장인 천재동 옹 회고록 '아흔 고개를 넘으니…' 발간

동래야류 탈 장인 천재동 옹 회고록 '아흔 고개를 넘으니…' 발간

천재동 옹의 손자가 고등학교 3학년 때 그린 '나의 할아버지'.

 

천재동(92) 옹의
거실 벽에
액자 하나가 걸려 있다.
시인 김춘수의
'절대로 절대로'라는 시를
서예가 김목운이 쓰고,
이석우 화백이 그림을 그린 액자다.
'천재동의 탈바가지가 그렇듯이
밝은 날도 흐린 날도
절대로 절대로
울지 않는다'.

동래야류 탈 제작 기능보유자
천재동 옹이
탈 속에 감춰뒀던
속내를 털어놓은
회고록을 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증곡 천재동 회고록
-아흔 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

울산 방어진에서 보낸 어린 시절, 미술과 연극을 배웠던 일본 유학 시절, 초등학교 교사로 아동극에 심취했던 시절, 민속놀이와 동래야류에 얽힌 이야기 등을 솔직하게 털어놨다.

나이 열여섯 때 또래 친구들을 모아 무대에 올렸던 연극 때문에 얻었던 '방어진의 천재동(天才童)'이란 별명, 교회당에서 일본 승려의 주례로 독립투사의 딸과 혼례를 올렸던 기막힌 사연, 1960년대 진로 소주와 코카콜라를 섞어 만든 소위 '코카 소주'를 돌리던 시인 천상병 이인영과의 만남, 65년 한국 최초로 창작탈 전시회를 열었을 때에야 비로소 알게 된 동래야류….

걸레 스님 중광이 불쑥 찾아온 일이 있었다. "말뚝이 탈 한 점 팔면 얼마의 값을 받습니까?" 갑작스러운 중광 스님의 질문에 "사려는 사람도 없거니와 만약 사려는 사람이 있다면 한 200만원 될까요?"라고 황당해하면서 답했단다. "뭐 인간문화재 작품이 200만원이라… 내가 그린 4절 크기 동자 반신상은 800만원이요". 중광은 "문화재의 작품보다 거지 중의 작품 값이 4배나 많이 나가니 어이 선생을 가까이 하겠소"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그 뒤로 그를 본 적은 없다고 했다.

문화판의 뒷이야기를 담은 그의 글에선 서운한 감정을 드러낸 표현이 많다.

80년 그가 온갖 자료를 다 뒤져 혼자 그린 '동래부사 송상현 군사행렬도'가 나중에 엉뚱하게 여러 사람이 함께 작업한 것으로 둔갑된 것이라든지, 동래야류와 동래지신밟기 연희본을 정립하고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는 회한들이 대표적이다.

67년 서독 뤼브케 대통령의 부산방문을 환영하기 위한 가장행렬 준비 때의 일. 부산 개항 이후 첫 가장행렬이었지만 밀양백중놀이 예능보유자 김타업 선생과 당시 부산대 한형석 교수, 그리고 그, 이렇게 3명만 죽자 사자 일에 매달렸다. 돈 한푼 없이 오방신장을 만들어야 했을 때, 우연히 온천장 시장을 지나다 가게 앞에 쌓여 있던 쓰레기 더미를 봤다. 그 쓰레기를 처분해 주는 조건으로 부스러기들을 모아 오방신장의 눈과 코 그리고 입을 만들어 붙였다는 사실은 극히 몇 명만 아는 가슴 아픈 뒷이야기다.

400쪽이 넘는 회고록은 80년대부터 평소에 틈틈이 메모한 것과, 기억나는 것들을 구술해 아들들이 정리했다. 15일 오후 6시 부산 동구 범일동 크라운호텔 2층 동백홀에서 출판기념회가 열린다.

이상헌기자 ttong@busan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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