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99. 인민교육을 시켜라 !

무극인 2009. 11. 5. 14:43

신설 방어진국민학교(方魚津國民學校)에 근무하는 동안에

여러 차례의 사건이 있었는데,

그 중에서도 잊혀지지 않는 한 가지 수난사(受難事)를 소개하면,

어느 날 밤 죽마고우(竹馬故友) 김영식(金永植)이

곤히 잠자고 있는 나를 깨웠는데 그때 시간은 새벽 1시경 이었다.

시국이 어지러울 때인지라 약간의 의구심은 가졌지만

친구이기 때문에 별로 크게 의심하지 않고 따라 나섰다.

이끌려 간곳은 서진구(西津區) 바닷가 시장 부근 삼거리였는데,

삼거리 한가운데에 나를 꿇어앉히고 고개를 못 들게 하는 것이다.

‘친한 친구가 이럴 수가 있나?’고 생각할 여지없이

사람들이 빙 둘러 싸는 것이다.

눈앞에는 운동화를 신은 발이 보이고 모두 죽창(竹槍)을 짚고 있었다.

서북청년(西北靑年) 단원이 며칠 전에 죽창으로 살해한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나는 불현듯 ‘이번에는 내 차례구나’하고 생각하니

전신에 소름이 돋으면서 치가 떨리는 전율을 느꼈다.

 “어떠냐? 천선생 내가 부탁하는데,

아동들에게 인민교육(人民敎育)을 시켜 줄 수 없는가?

김영식은 이렇게 첫말을 걸어왔다.

“인민교육(人民敎育)이 어떤 것이며, 어떤 형식으로 교육시키란 말인가?” 

“니, 몰라서 묻는 거가, 알면서 묻는 거가!?” 

“지금 시급한 것은 아동들에게 한글을 하루 빨리 한자라도 많이 가르쳐야 할 시기다.”?

“인민교육도 글자부터 먼저 알아야 될 것 아닌가?”

“교육시키는 데는 우선 교육부(敎育部) 지침에 따라야 되지 않느냐??”

등으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김영식(金永植)은 펄떡 일어서더니

“오장육부(五臟六腑)가 썩은 놈!” 이라면서

운동화 발로 나의 왼쪽 어깨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나는 힘없이 뒤로 넘어졌지만 정신을 바짝 차리고 일어나 앉으면서

만약의 죽창 공격에 대비하기 위하여

빠른 동작으로 단거리 달리기 자세를 취하였다.

공격 기세가 보이면 번개같이 상대의 다리를 쳐 해치고 마구 달려갈 생각이다.

나는 달리기로 겨루는 데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상대는 별 요동없이 잠깐 침묵이 흐르는데,

문득 “나하고 말할 상대가 안 된다. 돌아가!”라고 하였지만,

나는 긴장을 풀지 않았다.

과거 강진호(姜晋鎬)란 친구가 있었는데 

빨치산에게 붙들러 가서 온갖 욕을 당하고는

“가라!!”해서 돌아서 가는 등에다

총을 쏘아 생명을 앗아간 사건이 생각나서

 나는 등이 오싹오싹하고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무사히 집에 돌아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