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103. 고향 방어진 풍경2

무극인 2011. 3. 22. 14:39

 

◎ 고향 풍경2

 방어진 앞 바다는 수심, 조류, 수온 등 수산물 서식에 적당한 천혜의 수역이다. 고래, 방어, 고등어 등 어류는 물론 미역, 김 같은 해초류도 풍부하여 이를 안 일인들이 그냥 보고 지나칠 리가 없다. 일인들에 의해 방어진 항이 본격적인 개발의 바람이 불면서 동편 섬끝과 자갈밭 그리고 서편 볕바우산 일대만 남겨두고 온통 주거지로 변하였다. 해안통과 산복에는 신작로가 뚫리고 은행, 우편국, 자동차부, 만물상, 요정 등 ‘청루(靑樓)골목’같은 홍등가도 생겨 낮 밤 없이 샤미센(三味線)과 북소리가 끊이지 않았으며 극장가에서 펄럭이는 선전용 깃발은 우리들로 하여금 호기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하였다. 언덕을 뭉개어 심상소학교를 설립하는 한편 삼밭골에 건설된 화력전기회사에서 큼직한 쇠바퀴가 밤낮 가리지 않고 쉴 사이 없이 퀑퀑거리며 돌아가는 소리가 먼데까지 들려왔다. 항구에는 고등어 잡이 건착선(巾着船) 30여척과 거기에 딸린 보존선(保存船), 운반선들이 항구를 가득 메웠고 아침저녁으로 일인 어부들이 그물을 식히느라 그물을 물에 담갔다 건져 올리는 작업을 반복하면서 부르는 ‘세노야 세노야’ 뱃노래가 울려 퍼지면서 그들은 기세를 과시하였다. 훈도시 차림의 일인 어부들이 분주히 이 배에서 다음배로 가로질러 건너다니는가 하면 그런 차림으로 거리를 활보하는 꼴에 우리 부녀자들을 물론 남정네들 까지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시 방어진에는 백 명을 수용이 가능한 대중목욕탕이 3곳이나 있었는데 목욕탕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는 훈도시 차림으로 운집한 군상들은 상상을 초월한 광경이어서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신기하여 구경거리는 충분히 되었다. 간혹 공산체제로부터 탈출하여 유랑 생활을 하는 백색계 러시아 노인들이 입항할 때가 있었는데 감색 제복을 입은 그들은 구멍이 송송 난 뚜껑이 달린 색소폰 형태의 주먹 크기 만 한 마도로스파이프를 입에 물고 연신 연기를 뿜어대면서 거리를 기웃기웃 거리며 배회하는 광경도 이채로웠다. 일인들은 무인지경에 가까운 황지(荒地)인 방어진을 개척하여 고등어 잡이 전초기지로 만들어 육·해상을 막론하고 왜풍일색(倭風一色)으로 만들어 놓았다.

 방어진에 가면 일자리가 있고 잘 살아 갈 수 있다는 소문이 널리 번져나가면서 조선 각지에서 모여든 우리 노무자들이 일부 미개발 항구 자갈밭을 매축하느라 ‘앤야라차~아’ 노동요를 불러가며 땀흘리며 열심히 일하는 현장을 우리들에게는 또 하나 구경거리가 되기에 충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