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102. 고향 방어진 열풍

무극인 2011. 3. 22. 14:36

 

◎ 고향 방어진 열풍

 건축·도로공사·매축 등 각종 공사와 활기찬 어업으로 경기가 활발한 방어진에 남·북도 전국 각지에서 일꾼들이 모여들었고, 방어진에 가면 개도 10원짜리 돈을 물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거지와 팔도 각설이 패(대개가 나병환자들이었음)들도 모여들었다. 농악걸립패, 유랑극단, 마술단, 곡마단, 동물시바이(芝居: 극장), 유명 영화배우들의 무대인사, 극장 다이쇼깡(大正舘)에 이어 생긴 도끼와깡(常盤舘)은 영화와 연극을 겸한 극장으로 당시에는 그 대단함을 널리 과시할 만 하였다. 일본 스모 요꼬쯔나(천하장사)대회 등 문화행사가 열릴 때마다 울산, 부산 등지에서 떼를 지어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교통수단으로서는 육상으로 울산을 경유하여 부산에 오가는 경남자동차회사의 노리아이지도샤(乘合自動車)와 산양자동차부(山陽自動車部) 두 회사가 있었는데 서로 간에 경쟁력이 치열하였고 해상으로는 하루에 두 번씩 사람과 하물을 싣고 부산을 왕래하는 천 톤급의 정기여객 기선이 있었다. 고정 오락시설은 소형 사격장이 있었는데 인형을 쏘아 떨어뜨려 가지기, 쌓아 둔 갑담배 무너뜨려 가지기 그리고 당구대를 6대를 갖춘 당구장이 있었고 체육 보건 문화시설로는 자전거 경기장, 야구장, 축구장, 정구장, 유도장, 대형 공중목욕탕이 3곳에나 있었는데 중진(中津)에 옛날 기도(木戶)병원 자리에 있던 목욕탕 그리고 순사주재소 앞 에가와(江川)목욕탕, 서진(西津)에 시장자리에 있었던 목욕탕 등 모두가 백 명을 수용 가능한 목욕탕이었다. 전국 어느 지역사회와의 문화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역동적인 방어진이었다.

순사주재소, 우편소, 공립심상고등소학교, 위생조합, 소방서, 재향군인회, 금융조합 보다 훨신 전에 생긴 상업은행, 방어진에 본점을 두었다가 훗날 영업부만 남겨두고 옮겨간 햐야시가네(林兼) 수산회사, 일본수산주식회사출장소, 코오다(合田) 일본 청주주조장, 방어진어업조합, 조선(造船)과 철공(鐵工)이 어울려진 조선(朝鮮) 유일의 큰 회사로 널리 알려졌던 방어진조선철공소, 미요시(三好) 매실장아찌공장, 선구점(船具店)이 본업이고 가이소(回遭部: 여객터미널)는 부업이었던 가와구찌(川口), 무라카미(村上)조선소, 하야시가네 통조림 공장 및 정어리 기름공장, 여관이 본업이었고 가이소(回遭部)가 부업이었던 사노키야(讚岐屋)는 경영자가 다른 3층 미우리(三浦) 여관, 오바야시(大林) 선구점, 대형 만물상 아리요시(有吉) 등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