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남주례(生男主禮)
친구 방부원(房富源)의 알선으로 대청동(大廳洞) 구 대청예식장(大廳禮式場)에 연구실을 차리고 있을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국제시장 건물 2층에서 양복점을 경영한다는 한 40대 초반의 남자가 찾아왔다. 자식을 득하기 위해 장가를 들게 되었는데 주례를 맡아달라는 것이다. 갑작스런 부탁에 당황도 되고 주례를 할 처지도 못되어서 한마디로 거절하였다. 며칠 후 그 신랑 될 사람이 다시 찾아왔는데 이번에는 신부 될 여인을 동반하여 온 것이다. 남자는 42세 여자는 36세, 5년 동안 동거생활을 해 왔으나 아직 자식을 얻지 못하여 고민하던 중에 소문을 듣고 찾아 왔다면서 ‘先生께서 主禮를 서 주신 新婦들은 어김없이 모두가 生男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우리도 先生의 主禮下에 婚禮式을 올려서 꼭 得男을 해야 됩니다’면서 백배 애원하는 것이었다. 그들의 안타깝고 애틋한 심정을 헤아리지 못하는 바는 아니나 나는 걱정이 되었다. 나는 말재주가 없어서 결혼 승인문만 낭독해도 좋겠느냐고 물으니 주례자리에 올라 서 주시는 것만 하여도 영광이라고 하였다. 나는 비로소 승낙하고 만 것이다. 식장은 부산에서 제일 번화가에 있는 새부산예식장이었다. 나는 약속대로 결혼 승인문만 읽고 예식장을 떠난 것이다.
그 후로 2년쯤 세월이 흘렀을까? 하루는 백색 밍크모피를 입힌 아이를 안은 남녀가 연구실에 들어서더니 저 만치서 땅바닥에 무릎을 꿇고 큰절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는 가까이 다가오더니 ‘우리는 선생님께서 주례하여 주셔서 결혼한 ○○○입니다. 결혼 직후 서울로 이사를 하여 일찍 인사드리지 못하고 이제 온 것입니다. 이 아기가 선생님께서 점지해 주신 사내아이입니다. 福되게 머리 한번 쓰다듬어 주십시오’ 하는 것이었다.
내가 주례를 맡은 부부마다 생남한 것은 소문으로 알고 있으나 그렇다 해서 서울에서 3칠일도 지내지 않은 갓난아이를 안고 여기까지 인사 온 것에 대하여 참말 고마웠다. 그런데 몹시 궁금한 것은 김준호(金準鎬)와 손심심(孫心深) 부부는 4년째 들지마는 아직 생남소식이 없으니 말이다. 손심심이 득남을 해야 나의 신통력(?)이 인정될 텐데… ‘生男은 어떻게 됐냐?’고 물을 때마다 ‘아이고 선생님 아직 몰랐어요?’란 답변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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