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화의 노래
『울산예총21년사』에 실린 내용 중 열거된 이름 중에 윤종화(尹鍾和)가 있다, 윤종화는 본래 울산 읍내 출신인데 누님이 방어진으로 시집올 때 누님 따라 온 것이 방어진 사람이 되고 만 것이다. 방어진에 온 어느 유랑 극단을 따라 가출하여 상업 연극단의 일원이 된 셈인데 한번씩 다니러 올 때 모습을 보면 차양 없는 학생 모자를 쓰고 망토를 걸치고 있었다. 본인의 극중 역할이 악사(樂士), 가수(막간가수), 자역(子役)을 맡는 등 윤종화는 다재다능하였으며, 올 때마다 무엇이든 하나씩 남겨 두고 갔다. 이러한 당시의 분위기 속에서 이광호(李光浩)는 클라리넷을, 이칠헌(李七憲)은 큰북, 이몽호(李夢虎)는 바이올린, 나는 형님이 소지하고 있는 만돌린을 다루었는데 우리는 사이다를 탄 소주를 마셔 가면서 합주도 했다. 당시의 노래라면“학도야 학도야 청년 학도야…….”같은『면학가』『세동무』『낙화유수』등이고 일본노래『용조』『유랑의 노래』같은 것이 고작이었다. 한번은 윤종화가 다음과 같은 서정적인 새로운 노래를 가지고 온 것이다.
꽃고개를 붙들고 네가 왜 우니
분홍치마 눈물에 얼룩이 진다
복숭아꽃 필 때마다 가슴이 아파
한숨으로 이 봄도 저물었다오
꽃이 피면 흔들리는 처녀의 마음
울지 마라 이봄도 아깝잖느냐
아까운 봄 이 봄이 못오리마는
떠나가는 기차소리 속이 상하우
때는 사춘기라 애처로운 신식 곡조에 감동되어 울면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다. 70년 전에 윤종화에게서 배운 노래를 지금도 잊지 않고 가끔 혼자 노래하며 옛날을 회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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