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135.시작된 타향살이

무극인 2018. 5. 9. 21:08

시작된 타향살이

 1954년 봄 우리 식구는 꼭 필요한 가재도구들만 정리하여 짐을 꾸려 정든 고향 산천과 이웃 그리고 친지들을 뒤로한 채 울산 태화국민학교 교장사택으로 이사를 했다. 울산(蔚山)으로 이사하는 날 방어진국민학교 교정에서 교직원과 전교생이 모인 가운데 송별 인사를 하고 교문을 나설 때 교문에서부터 도로 양편에 길게 도열한 동료직원과 이웃 주민들 그리고 사랑스런 어린 제자들의 아쉬운 송별 인사는 평생을 두고두고 잊을 수가 없다. 특히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보이지 않을 때까지 흔들면서 환송해 주던 어린 제자들의 모습은 나로 하여금 눈시울을 적시게 하는데 충분하였다. 울산으로의 이사가 결국 고향 방어진을 떠나, 오늘 날 까지 반세기 동안 객지 생활의 시작이 되리라고 당시에는 상상조차 못해봤다. 입주한 사택은 학교 운동장 동편 강당 앞쪽에 있으면서 제23육군병원(第二十三陸軍病院)과의 사이는 판목(板木)울타리로 경계를 이루고 있었으며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에 일본인 교장 관사였다. 가옥(家屋)은 다소 노후한 편이었으나 잘 가꾼 수목(樹木)과 연못이 있는 넓은 정원, 목욕탕, 실내화장실, 다다미가 깔린 넓은 접견실 겸 서재(書齋)에는 대형 피아노도 있었고 가옥(家屋) 뒤에는 창고와 넓은 채전밭이 있었다. 사택에 거주하면서 육군병원의 사정을 하나하나 보고 듣기도 하였는데 입원 군인 환자들의 생활은 참으로 비참하였다. 전쟁 직후라서 나라 형편이 말 못하게 어려웠겠지만 나중에 들은 이야기로는 원장인 김윤근(金潤根)장군은 많은 입원군(入院軍) 환자를 굶주리게 하고 의약품 부족으로 사상자도 많이 내는 등 비리에 연루되어서 군사재판에 회부되어 끝내 처형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 있다. 이 해에 넷째 딸 미명(美明)을 출산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