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묘역 보호해도 모자랄판에”
• 김원경
• 승인 2022.05.03 23:07
동구, 서진문 선생 묘역 경관 막는 문화센터 설계변경 없이 강행
후손들 “처음엔 18.1m라더니 지난달 20.7m로 말 바꿔” 반발
구청 “설계변경땐 다시 원점… 예산·공기 연장 등 이유로 불가”
울산 동구가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의 묘지 경관을 막는 문화센터 건립을 설계변경 없이 강행키로 해 후손들이 반발하고 있다. 사진은 서진문 선생 묘지 전경.
울산시 동구가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진문 선생의 묘지 경관을 막는 신축건물을 설계변경 없이 강행키로 해 후손들이 반발하고 있다. 올해 초 사업내용을 인지한 후손들은 묘역 조망권 보호를 위해 건물 높이를 낮춰줄 것을 요구했으나 동구는 예산문제와 공기 연장 등의 이유로 설계변경은 힘들다는 입장이다.
3일 서진문(1900∼1928) 선생의 묘소가 위치한 동구 화정공원은 어울림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기초공사가 한창이었다. 2019년 광복절에 세워진 선생의 흉상도 이전됐고, 묘소로 향하는 길도 막힌 데다 별도의 안내표시도 없어 지리적 여건을 아는 주민 이외에는 찾기 힘든 구조였다. 공원에서 만난 주민 정모(75)씨는 “나라를 위해 돌아가신 분을 모신 곳을 잘 관리 하면 좋은데 코앞에 건물이 들어선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어울림문화센터는 화정공원 일원에 58억7천800만원의 사업비를 들여 지상 4층 규모로 조성하는데 그 높이만 20.7m다. 이는 바로 뒤 서진문 선생의 묘소보다 8m 가량 높은 위치로 바다 조망의 동편을 완전히 가리게 된다.
때문에 선생의 후손 측은 올해 초 호소문을 통해 묘지 주변 자연경관과 조망권 훼손을 막기 위해 설계변경과 화정공원의 정체성을 담아 ‘서진문공원’으로 성역화 해줄 것을 동구에 요청했다.
하지만 동구는 “설계변경을 위해서는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야 한다”며 “예산문제와 공기 연장 등의 이유로 불가하다”고 밝혔다. 또 “다수의 주민들이 원하는 시설이라 이 역시 무시할 수 없다”면서 “다만 센터 명칭에 ‘서진문 선생’을 넣거나 전시공간을 마련하기 위한 검토는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이에 서진문 선생의 외손자 천영배(75)씨는 소통 없는 일방행정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천영배 씨는 “유족과 사전 협의가 없었던 것도 분통 터지는데 높이도 처음엔 18.1m라더니 지난달 20.7m로 말까지 바꿨다”며 “답답한 마음에 피켓시위라도 벌일 예정”이라고 말했다.
이어 “재일조선인노동조합에 가입해 조선인 노동자들의 권익을 대변하고 독립운동하다 살인적 고문으로 숨을 거둔 선생의 유해는 1929년께 고향 일산지에 운구된 후 화정공원에서 면민장으로 성대히 치러졌다”며 “광복 이후에는 전국애국순례단과 노동단체들의 참배가 이어졌고 호국광장에선 3.1절, 광복절 기념행사가 진행돼 왔는데 이제 이 광장마저 사라진다니 마음이 참 좋지 않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결정에 지역 인사들도 안타까움을 전했다.
이기우 문화예술관광진흥연구소장은 “서진문 선생의 딸 등 유족들에 따르면 선생은 요코하마에서 권총으로 일왕 저격을 위해 나섰다가 미수사건으로 잡혀 모진 고문을 당하다 숨을 거두셨다”며 “당시 일본은 ‘예비검속’, 국내 언론은 ‘모사건’이라 표현했지만 좀 더 관심을 갖고 증거를 찾는 다면 건국훈장 5등급이 아닌 2,3 등급도 가능한 인물인데 이 같은 결정이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이정호 수필가 겸 전 울산교육과학연구원장은 “독립운동가 묘역 앞에 건물이 들어서는 건 일반적으로 드문 사례”라며 “일제강점기 때 온몸을 던져 독립운동을 펼친 서진문 선생의 묘역은 현충시설로 지정만 안됐을뿐 그만큼 보호해야 할 가치가 상당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서진문 선생은 1924년 동구 보성학교에서 교사로 재직하면서 학생들에게 항일정신을 알렸다. 서 선생은 유학했던 일본으로 1926년 다시 건너가 노동운동과 독립운동에 앞장섰다가 1928년 체포됐으며 고문을 받다가 석방됐으나 그다음 날 순국했다.
유해는 1929년 1월 동구 일산동으로 운구됐고, 장례는 면민장으로 거행됐다. 김원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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