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진두
[문화칼럼] 증곡 어른이 남기고 가신 뜻/ 이진두 언론인2007/07/31 031면 10:34:53 프린터 출력 부산일보
천재동(千在東) 어른이 타계하셨다. 그분이 그립고 떠난 자리가 휑하니 찬바람이 느껴진다. 큰 인물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으레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증곡 어른의 타계가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하는 것은 그분이 90 평생 '우리 것'을 찾고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힘써 오셨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증곡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탈 장인이시다. 동래들놀음이라고도 하는 우리 민속놀이에 쓰이는 탈을 제작하는 기능보유자이시다. 이 놀이에는 양반, 말뚝이, 영노, 할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이 얼굴에 쓰고 나오는 탈을 증곡 어른이 만드셨다.
동래 금강공원 안에는 부산민속보존회가 있고 놀이마당이 있다. 보존회의 놀이마당에서는 연중 민속놀이 판을 벌인다. 동래야류, 동래학춤, 수영농청놀이 등 신명난 판이 열린다. 상시공연 이외에 해마다 한 번씩 정기발표회를 열 때면 증곡 어른이 꼭 참석하신다. 그 대회에는 각 종목이 연희되고 또한 중·고교 전수학교의 전수생들이 그동안 연마한 기량을 선보인다. 어른이 좌정하시면 기성 연희자와 전수생들은 긴장감과 평안함을 동시에 품게 된다. 긴장감은 선생의 예리한 눈을 의식해서이고 평안함은 내 허점을 큰 부끄러움 없이 지적받을 수 있다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더 큰 수확은 증곡 어른의 실연을 보고 익힐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엄격하면서도 자상하고 관대하신 증곡 어른이 계시기에 놀이마당에서의 한판은 연희자나 관객이나 한데 얼려 덩더실 어깨춤을 추게 되는 것이다. 이제 그 어른을 뵐 수 없게 됐다. 그분의 모습도, 그분의 음성도 듣지 못하게 됐다. 그러니 더욱 그립고 떠난 자리가 썰렁하다.
우리는 흔히 가신 어른의 영전에서 유지를 받들어 모시겠다고 다짐하곤 한다. 그러나 정작 돌아서서는 그 다짐을 잊기도 잘한다. 선생이 가신 지금 그 다양한 성격의 탈은 누가 만들려는가. 토우 제작은 누가 이을 것인가. 그 어른이 평생 수집한 전래동요와 그 노래에 맞춘 민속화는 누가 그릴 것인가. 오줌싸개가 바가지를 들고 소금을 얻으러 가면서 키를 머리에 쓰고 우거지상을 한 토우는 웃음을 절로 자아내게 한다. 더 우스운 건 오줌싸개의 아랫도리는 바지가 벗겨져 있고 가랑이 사이엔 작은 고추가 달랑 달려 있다. 증곡 어른은 그런 토우를 손에 들고 허허 웃으셨다. 이제 그 웃음은 어디에 퍼져 있을까.
80년대 대청동 고갯마루 대청예식장 건물 한쪽에 창고라 부르는 게 좋을 듯한 당신의 작업실이 있었다. 온갖 인물상을 재현한 탈을 여기저기 흐트려 놓고 탈바가지 하나 들고 앉아 마무리작업에 몰입해 있던 당신은 바로 또 하나의 커다란 탈바가지였다. 작은 탈 가운데 턱 버티고 앉은 크고 우람한 탈. 당신은 그렇게 우리 것을 가꾸고 지키는 큰 바위이셨다.
그 어른이 떠나신 이 자리, 당신이 지키신 우리 것, 우리 정신은 이제 남은 우리들이 더 찾고 더 가꾸고 더 잘 보존하여 다음 세대에 물려줘야 한다. 글로벌시대라 하여 우리 옛것에 대한 관심은 옅어지고 멀어져만 간다. 세월은 변한다. 시절도 따라 변하니 그 세월 그 시절에 맞추려고 사람들도 변해간다. 변하는 시절에 맞추어 따라가지 못하면 뒤처지고 밀려서 세계의 흐름에, 시대의 변화에 발맞추지 못해 낙오자가 된다고들 한다. 우리는 지금 전통을 지키면서 새 시대에도 맞추어가는 두 개의 가치관을 지니고 살아간다.
우리가 세계에 내세울 것은 많다. 그 많은 것들은 조상들의 삶의 지혜가 배어있는 민속이요 문화유산이다. 이들은 세계 어느 나라,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는 우리만의 것이다. 증곡 어른의 작품들, 당신이 찾고 모으고 만들고 보존하여 지금 우리에게 남기신 것을 보자. 거기서 우리는 여유와 웃음과 함께하기를 본다. 그리고 서로 감싸고 보듬고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 삶의 지혜를 읽을 수 있지 않은가. 이를 잘 지니고 가꿀 일이다. 내 것을 내가 챙기지 않고 남의 것만 바라보며 사는 게 글로벌시대의 삶은 아니잖은가. 증곡 어른의 유지를 받든다는 것, 그건 바로 우리 것의 전승 보존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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