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추탕(鰍湯)과 곰탕

무극인 2022. 11. 14. 01:21

* 추탕(鰍湯)과 곰탕

1941년도 청운의 꿈을 안고 서울에 입성하여 국민극연구소 연구생으로 활동할 때였다.

학습과정에 「인간스케치」란 학습이 있었다.

이는 공연할 작품이 결정돠면 각자 배역도 정해지면서

 맡은 역할에 도움이 될만한 성격. 행위, 어투, 표정, 의상 등

보탬이 될 만한 인물과 분위기를 여기저기 찾아다니면서 관찰하고 연구하는 학습과정이다.

어느 날 인간스케치 핑계로 동대문 밖 청량리 강변에 있다는

 소문난 추탕 집을 몇몇 동료와 함께 찾아갔다.

형제상회라는 상호를 가진 이 식당은 모래밭 위에 세워져 있었고

 주변 일대가 모두 모래밭이었는데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는

 갈대를 엮어서 칸칸이 만든 온통 갈대 촌이었다.

우리 일행은 한 갈대 칸에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잠시 후 여주인이 내어 온 추탕이란,

사기그릇에 담은 쌀과 보리가 반반씩 섞인 밥과,

뚝배기에 담긴 맹국물 속에 두부조각들이 들어있고

그 위에 열을 받아 변색되어 ��한 온마리 미꾸라지가

희멀끔한 눈을 뜬 채로 누워있었다.

젓가락으로 미꾸라지를 집어내고 난 뒤에 숟가락으로 국을 저으니

놀랍게도 두부 속에 감춰져 있던 미꾸라지들이 온통 수면위로 떠오르는 것이었다.

처음 대하는 추탕이라 한 술도 먹지 못하고 옆 사람들만 살펴보니

모두들 미꾸라지를 통째로 맛있게 옥닥옥닥 씹어 먹고 있었다.

오는 길에 우리 고장에서 요리하여 먹는 추어탕을 설명하였더니

동료들이 이상하게 생각하는 데는 오히려 내가 놀랬다.

평일에는 바쁜 나날이었고 일요일에는 공연에 참여하거나 관람, 영화감상 등으로 하루를 보냈다

 토요일 공연이 없는 오후에는 여유를 가지고 소문난 먹거리를 찾기도 하였는데,

 한번쯤 먹어 볼만하다는 곰탕 집을 찾아 나섰다.

다 허물어져 갈 것 같은 허름한 초가집이었다.

15평 남짓한 울퉁불퉁한 땅바닥에 폭 20센티 가량의 기다란 널빤지가

 한사람이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사이를 두고 가로로 두 줄씩

여러 칸으로 줄을 지어 나지막하게 놓여져 있었다.

자리를 정하여 앉고 보니 앞에 있는 널빤지가 자연스럽게 식탁이 되었다.

 저쪽 한 구석에 김을 솔솔 뿜고있는 큼직한 가마솥,

 나무로 만들어진 두꺼운 뚜껑은 반쪽만 열게되어 있었는데

그 위에는 돌덩어리 두 개가 얹혀있었다.

 여러 계층의 많은 손님들, 불편한 시설 속에서 똑같은 자세와 동작으로,

맛있는 국물 한 방울이라도 흘릴세라 허리를 굽혀가면서 먹어대는 이 광경 속에

 나 역시도 살기 위해 먹어야 한다는 동물 본성의 발로 그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눅진눅진한 진국물이 내 입에서 간도 적당하고,

연하고 졸깃졸깃한 고기 살맛이 얼마나 맛좋은지 헛소문이 아니군! 할 정도로

 나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살코기는 더 얻어먹을 수 없지만 계속 끓고있는 국물은 마음껏 떠먹을 수 있다하여

 나도 국물을 떠먹기 위해 가마솥 앞에 나섰다.

뚜껑 위의 돌을 치우고 뚜껑을 들어 올리는 순간

뜨거운 김이 확! 하고 얼굴을 뒤덮어 깜짝 놀라고 말았다.

 정신을 차려 눈을 떠보니 이빨을 악물고, 눈을 부릅뜬 채,

 커다란 콧구멍이 벌렁한 물체가 내 코앞에서 불쑥 솟아올라와

나도 모르게 윽! 하고 소리를 지르고 만 것이었다.

순간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들렸고, 알고 보니 소머리였다.

소머리는 탕 국물을 만드느라 항상 솥 안에 들어있는 것인데

 솥뚜껑에 짓눌려 있다가 뚜껑이 열리는 순간에 떠오를 수밖엔.

 국물을 뜨며 솥 안을 살펴보니 반쪽 고정된 뚜껑 아래 또 다른 하나의 소머리가

지그시 눈을 감고 희생하고 있는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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