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평양여인

무극인 2022. 11. 14. 01:16

 * 평양여인

『국민극 연구소』지원자의 한 사람으로 경성에 도착하여 관철동 조그마한 여관에서 묵기로 하였다.

 2층 구석방을 내방으로 택했는데 이 여관의 식구는 여주인,

 식모 할매, 뽀이 박군 그리고 심부름꾼 소년 현군 모두 네 사람이었다.

 무대인이 되고 싶어서 일본 동경에서 조국 서울에 돌아와서

 400명의 지원자 가운데서 선발된 38명중의 한 사람이 된 나는

 열심히 수강하고 실습에 임하였으며 토․일요일은 물론 공휴일 없이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는데

극단『현대극장』에서 공연이 있을 때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돌아올 수가 있었다.

 어느 날 9시경에 돌아와 하루의 피로로 다리를 뻗고 편히 쉬고 있는데

 아래쪽 본채에서 남녀간에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박군아! 2층에 가서 아저씨 오시라 해!” 한다.

 

 박군이 급히 내 방으로 달려와서는

“선생님 마담이 오시랍니다” 하지 않겠나,

 

 나는 육감적으로 “위급하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속담을 머리에 떠올리면서,

 순간 주인을 대역하는 배우가 되어 태연한 자세로 방안에 들어섰다.

 당시 내 나이 25살이오 신장은 1미터 78센티에 체중 70,

술상을 사이에 두고 주인 마담과 한 남자가 대좌하여

서로 일그러진 표정에 눈에는 불을 켜고 마주 보고 있는 중이었다.

 마담은 나를 보자 말자 용기백배가 되어

 

“여보, 거기 앉아요!” 하고는

일본말로 “이 자식아, 평양 여자를 모르느냐!”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이는데

사나이는 나를 힐끈 처다 보고는 꽁무니를 쓸쓸 빼더니 슬그머니 도망치듯 나가버리는 것이다.

 

“박군아! 여기 새로 술 한 상 차려와.” 했지만

나는 술과 담배를 못하는 때인지라 사양하고 자리에서 일어나고 말았다.

이튿날 아침에 밥 먹으러 갔더니 마담 방에

겸상을 차려놓고 함께 먹자는 데 놀랬지만 며칠 간 계속되었다.

 이러다간 큰일 나겠다고 고민하던 중에

마침 청홍(靑虹) 박종렬(朴鐘列) 화백의 소개로 다동(茶洞)으로 하숙을 옮기게 되었다.

 

《서울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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