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辛佑彦 翁의 귀중한 證言
1965年 10月 “ 동래야류”란 이름의 假面舞劇이 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에 出戰하여 大統領賞을 수상하여 歸省報告를 겸한 祝賀公演을 釜山日報 프레스홀(4층)에서 개최했고 나는 창작가면작품전을 부산시 공보관 전시장에서 개전하고 있었다. 나는 이 때 탈놀이를 보았고, 놀이 일행은 탈 전시를 보게 되었다. 놀이와 탈의 최초대면이 되어버린 동질간의 인연인가 전시관에서 우선 구두로 가입하기로 했다. 이것이 나에게는 운명적인 첫 만남이 된 것이다. 그 당시 나에게는 모든 것이 생소해서 인물, 사물, 방법 등 익숙할 때까지 수년이 요했다. 그 당시 협회명칭이 “東萊野遊保存會”로 불려진 것으로 기억한다.
○. 전국대회에 출연한 요인들
당시는 집회소나 사무실이 없어 韓元錫 會長宅에 모여 사무도 보고 연습도 했다. 그 때 알아낸 全國大會에 출연한 연희자 및 요원들을 써 보면 다음과 같다.
* 辛佑彦氏의 考證으로 演戱를 하였다.
* 演戱者로는 朴德業, 盧振奎, 李南先, 梁克洙, 文章垣, 金德善, 梁世珠, 金熙英, 李一宇, 張實根 等이고 樂士陣도 많았지만 記憶이 나지 않는다.
* 出演物은 第二兩班科場과 第四영감 할미科場 二種目으로 出演했고
* 탈 製作에는 主로 梁世珠, 申性根의 二点의 兩班탈, 잔심부름은 李一宇 自身이 라고 장담, 當時 여러가지 事情으로 인하여 第一 문둥이 科場, 第三 영노 科場 만은 實演하지 못했다.
* 役割을 보면 말뚝이-朴德業, 元兩班-文章垣, 次兩班-盧振奎, 毛兩班-金永賢, 넷째兩班-金熙英, 宗家宅道令-張實根, 할미-梁克洙가 맡았고, 服裝은 영감은 元 兩班차림 그대로의 文章垣, 악사는 꽹과리의 梁世珠만 記憶이 나는데 宗家집 道 令은 省略하고 張實根은 북을 쳤다는 說.
* 여기에 出演하기위한 經費는 東萊地神밟기에서 基金을 調達했다.
○. 社團法人 歷代 理事長
初代로 金夏得先生을 理事長으로 추대하고 理事陣은 釜山大學校 敎授를 主築으로 하고 要員으로는 辛佑彦, 韓元錫, 文致英… 等의 諸人事外의 參與者는 記憶나지 않 는다. 會議가 있을 때는 理事長 代行으로 韓元錫氏가 맡아 했는데 會議場은 주로 自宅 或은 屋外에서 開催하였다. 이러한 形便에서도 保存會는 날로 發展하였는데 歷代 理事長과 그 陣營을 記憶해 보면
* 第二代 李伯淳 理事長(名士로 溫泉場劇場 經營)
* 第三代 金基燮 理事長(東來칸트리 클럽 社長)
* 第四代 郭永郁 理事長(事業家)
* 第五代 尹佑東 理事長(事業家로 十年以上 最長壽)
(이와 같은 貴重한 來歷의 記錄은 없고 내가 직접 辛佑彦氏로부터 考證받은 것이다.)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카테고리의 다른 글
82.『동래야류 소고』 소책 엮어냄 (0) | 2009.08.01 |
---|---|
81. 내가 갈 길을 선택했다 (0) | 2009.08.01 |
79. 울산방어진 축구이야기 (0) | 2009.05.26 |
78. 방어진 남조선 야구대회 우승 (0) | 2009.05.19 |
77. 이상한 개관식 (0) | 2009.05.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