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전에 부쳐진 글

김열규

무극인 2012. 8. 3. 18:27


                  탈의 미학

                            김  열  규 (서강대학교 민속학 교수)

<가면작품전>, 곧 <탈 전시>는 매우 어려운 일이다. 춤과 발림(몸짓), 그리고 사설(대사)에다 장단을 더 붙여서 비로소 생동하던 탈을 여러 맥락(脈絡)에서 따로 떼어 놓고 그것 자체로서 독립성을 갖춘 예술작품으로서 보아주기를 요구하는 나머지 춤과 몸짓, 사설과 장단이 없고도 그것들이 어울려 있는 만큼의 <표정>과 <상징성>을 탈에다 부여하는 힘겨운 일을 감당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번 <가면전시회>가 내놓을 탈의 작품성은 바로 이 힘겨운 일이 이루어진 정도에 따라 결정되리라 믿는다.

우리들은 千在東氏에게서 그 힘겨운 일의 성취를 기대해도 좋을 것이다. 전문적 미술작가인데다 탈놀이 부분의 중요문화재 18号인 <동래들놀이>를 비롯한 여러 민속 연희의 전승자이자 연구가이기도 하다는 사실이 먼저 우리들의 기대가 어긋나지 않으리라는 것을 보증해 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결코 외형적 보증에 끝나지 않음을 구체적으로 작품들이 보여주고 있다.

천재동씨의 탈은 문자 그대로 『움직이지 않는 팬터마임』이다. 혹은 말뚝이 혹은 할미의 <페르조나>가 그 극적 클라이맥스에 도달한 순간의 표정을 칼리커츄어를 연상시키는 단순성과 핵심이 잘 드러난 과장과 그로테스크한 변형을 통해 연출해 내고 있다. 그러기에 『움직이지 않는 팬터마임』이라기보다 『움직임을 보이지 않게 내포하고 있는 팬터마임』이라고 고쳐 말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울러 그러한 여러 기법을 통해 탈춤에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의 사회성이며 역사성 그리고 그것들을 담은 생생한 인간성이 상징되어 있다는 점에도 우리들은 유념해야 한다.

한편 마떼리엘인 박의 처리도 보는 이의 눈길을 끌기에 족하다. 엷은 미색의 바가지의 바탕에 그 정갈한 질감과 함께 천연스럽게 살려져 있는가 하면 대담하고도 섬세하게 새겨 넣은 주름살과 거기다 입힌 색채가 어울려서 청동도 같고 석호도 같은 중량감을, 그리고 부피의 느낌을 강하게 풍겨주고 있다. 여기서 천재동씨가 미술학교에서 인체과를 전공한 적이 있다는 사실을 연상하게 된다. 바가지의 질감이 인물따라 수시로 변하면서 그때그때의 특수한 효과를 내고 있는 점은 종래의 탈에서는 보기 드문 일이다.

투박하나 말쑥하고 이지러졌으나 야멸찬 그리고 소박하나 사연이 많은 千在東氏의 탈이 두 번에 걸쳐 지방전시회에서 얻은 경험을 살려 서울 무대에서 춤꾼도 없이, 발림이나 사설, 장단도 없이 그저 혼자 제 흥에 겨워 절로 노니는 것을 보는 것은 정말 신명나는 일이다.

                              1978.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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