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회 천재동 단독 『시민위안민속대잔치』
1983년 제3회 천재동 단독주최《시민위안민속대잔치》를 마치고 이듬해인 1984년도에 개최한 제4회《시민위안민속대잔치》는 또 하나,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추억이 되어 내 마음속에 짙게 남아 있다.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취타대(吹打隊)가 유일하게 부산에 있는 구포여상(龜浦女商) 한 학교 밖에 없었다. 88올림픽을 앞두고 준비위원회에서는 구포여상 취타대를 올림픽 개막식 행사에 참여하기로 되어 있었다. 본 취타대를 내가 개최하는 시민위안잔치 행사에 참여 해 달라고 김영길(金英吉)교장에게 요청하였더니 교장은 여태껏 취타대원은 50인조였는데 올림픽을 대비해서 배수인 100명으로 확장 중이라서 여러 가지 준비 관계로 참가시킬 수 없다는 것이었다. 마지못해 김 교장과의 절친한 관계인 부산교육대학교 부속국교 정정봉(丁正奉)교장에게 협조를 의뢰했다. 두 분 교장이 전화 통화를 통하여 협조할 것을 승낙 받은 것이다. 제4회 시민위안민속잔치 제 1부에 있어서 우리나라 유일의 취타대가 부산의 대표적인 거리 광복동에서 그 자랑스러운 자태를 부산 시민에게 보여줄 수 있었던 것이 천재동이라는 보잘 것 없는 한 사람이 출연시켰다는 사실로 나의 자랑 중의 하나로 삼고 싶다. 이날 대한민국에서 하나뿐이었던 구포여상(龜浦女商) 취타대(吹打隊)의 연주와 풍물패의 장엄한 풍악 소리, 각양각색(各樣各色)의 깃발을 휘날리며 행렬하는 광경에 놀란 수많은 인파가 광복동 거리 대로변을 가득 메웠고, 고층 건물 창문을 통하여 환호하며 내려다보는 관중들, 일대 장관이었다. 광복동 거리 길놀이는 400명 이상의 인원이 동원되어 길놀이가 끝나면 출연자들에게 빵 한 봉지씩을 나누어 주기로 되어 있었는데 광복동 뉴욕양과점에 빵을 주문을 한 것이다. 박한기(朴漢基) 사장은 천재동이 좋은 일 하는데 내가 가만있을 수 있겠느냐면서 반액은 내가 부담하겠다면서 흔쾌히 협조해 주시는가하면, 제 3부 작품전시장의 대관료도 무료로 하는 등 아낌없이 성의를 베풀어주었다. 제 2부의 시민회관에서의 공연에는 지난해에 이어 이번에도 밀양(密陽)의 하보경(河寶鏡), 김타업(金他業), 김상용(金尙龍) 세 사람의 문화재(文化財)외 김(金), 권(權)양씨로 구성된 밀양별5고무(密陽別五鼓舞)의 우정출연(友情出演)으로 막을 올린 것이다. 작년 3회 공연에서는 시민회관 소강당에서 공연했을 때는 인파로 인해 입구의 유리를 깬 소동까지 있었던 관계로 이번에는 대강당에서 공연하기로 한 것이다. 생각대로 대 만원이었다.
밀양 별5고무는 우정 출연이라 할지라도 멀리 밀양에서 와 준만큼 나도 답례의 표시로 기차 비라도 줘야 인사가 아니겠느냐 고 생각하였으나 나에게는 한 푼의 돈도 없었다. 부득이 빌릴 수밖에 없어 객석을 살펴보니 내가 지도하는 모 고교 교감선생이 눈에 띄었다. 마침 잘 됐다 싶어 살짝 돈 2000원만 빌려 달라고 하였더니 가진 돈이 없다 하기에 딴 좌석을 물색 중에, 밀양 패들이 우리 역할은 마쳤다면서 가겠노라고 인사를 하였다. 조금만 기다려 주면 차비를 마련해 오겠다고 하였더니 40원이면 금방 밀양에 도착할 것인데 무슨 차비가 필요해 하고는 가 버렸다.
공연은 모두 끝났다. 관중도 출연자도 모두 다 가 버리고 나 혼자 무대에서 멍하니 서 있으니 조명실에서는 우리도 자야 하니 어서 나가 주시오 한다. 쫓기듯 바깥에 나와 보니 앞이 캄캄했다. 우선 전차나 버스를 탈 돈이 10원도 없다. 나는 누구를 위해 틀림없이 종을 울렸는데, 나를 위해 종을 울려 주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 당시 시민회관 전면에는 넓은 공지로 집한 채 없을 때고 당장 시급한 것은 돈 10원이다. 어떻게 해서 집으로 갈 것이냐? 이런저런 생각 중에 아닌 게 아니라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다. 마침 그때 저 편에서 독특한 음성의 소유자 김원(金原, 당시 미협이사장) 화백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끝난 모양이지 컴컴한데…….’ ‘우리가 너무 늦게 온 거야?’ 등등의 말을 주고받고 하면서 한 열명 남짓한 사람들이 오고 있었다. 참말로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 격이었다. 미협 이사회를 빨리 끝내고 달려온 것이라 한다. 늦게 온 죄로 술을 사는가 하면 택시까지 태워 보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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