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에 대한 신문기사

'탈할배' 천재동

무극인 2019. 9. 4. 22:24

부산일보

동래탈 만들기 외길 50년

화가 주경업이 만난 부산의꾼.쟁이들 ② '탈할배' 천재동

입력 : 2006-09-16 16:44:25수정 : 2009-01-30 01:46:09게재 : 2006-09-16 00:00:00 (22면)


화가는 자기의 얼굴을 그리고 조각가는 자기의 모습을 조각한다는데 천재동 선생이 만든 동래말뚝이탈은 영락없이 선생을 닮았다. 그래서인지 우리는 선생을 '동래탈할배''말뚝이할배'로 호칭하고,더러는 '탈기능보유자 천 선생','탈쟁이 천 선생'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탈을 만드는 사람은 주변에 많다. 안동하회마을 김동표는 하회탈만 고집스레 30년 넘게 만들고 있고 고성 갈촌탈박물관 이도열은 장승과 탈을 같이 만든다. 울산의 김현우는 삼국유사 '처용망해사'조에 기록된 처용랑탈의 대가다. 그는 이 탈을 20년 가까이 만들고 있다. 

천재동 선생이 탈에 관심을 둔 것은 부산 토성초등학교에 근무하던 1965년께였다. 아동연극에 쓸 탈을 종이로 만들면서였다. 그때의 탈은 찰흙으로 만든 자화상 위에 종이를 겹으로 붙이고 색칠한 것이 고작이었다. 그러다가 점차 부산지역에 있는 전통의 탈 제작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4년 뒤 선생은 돌연 사표를 썼다. 물론 부인에게는 그 사실을 숨겼다. 그러곤 동래들놀음판을 좇아 다녔다. 책 대신 바가지와 탈,통,칼 등이 들어있는 가방을 들고 신발이 닳도록 뛰어다녔다.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부산민속보존회에도 가입했다. 너무 심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시선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탈은 물론 민속과 관련된 여러 가지 자료들도 챙기고 정리했다.

그러다가 81년 국립중앙박물관 탈 전시장에서 동래말뚝이탈을 만났다. 너무 오래된 탈이라 보여줄 수 없다는 박물관 직원을 붙들고 두시간이나 입씨름 끝에 얻어낸 결과였다. 탈은 박물관 지하 수장고에 보관돼 있었다. 1961년에 작고한 김용우 선생이 만든 1930년대의 탈이었다. 김용우 선생은 이두상,이규삼씨와 더불어 동래탈을 제작하면서 동래들놀음에서 영감역을 한 분이었다. 탈의 구석구석을 훑어보고 자세하게 기록하는 것은 당연했다. 몰래 사진도 찍었다. 그리고 이를 토대로 동래말뚝이탈 제작에 들어갔다. 

탈은 검붉은 얼굴색을 하고 위로 치켜뜬 개구리 '왕눈'의 모습이다. 미간에서 시작한 코는 윗입술까지 기둥처럼 뻗었는데 콧구멍이 혹처럼 커서 벌렁코의 모습을 하고 있다. 활짝 웃는 입은 귀밑까지 찢어져 있다. 

선생은 눈 흰자위를 은박지로 바르고 눈동자는 툭 불거지게 만들었다. 눈언저리는 먹으로 그렸다. 귀는 따로 붙였다. 귀 하나의 크기가 얼굴 3분의 1쯤 됐다. 양쪽 귓불 밑에서부터 둥글게 황,녹,적색 종이를 감아 영락을 달았는데 길이가 110㎝가 넘었다. 험상스럽지만 전체적으로 보면 활짝 웃는 모습이었다. 동래말뚝이탈은 이렇게 해서 다시 태어났다.

동래말뚝이탈은 동래탈 중 가장 크다. 그래서 동래말뚝이탈은 쓰는 것이 아니라 어깨에 얹어 걸친다고 한다. 앞을 보기 위해 이빨 사이에 낸 구멍은 유달리 큰 탈 때문이라고 한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입방아를 찧었다. 코가 지나치리만큼 크다느니,이빨이 모나고 둥글다느니 쑥덕였다. 그러나 선생은 전혀 괘념치 않았다. 

선생의 연세는 올해 92세다. 이제는 '호호백발'이 되어 부인의 부축을 받아야만 겨우 나들이를 할 수 있다. 하지만 탈과 관련된 일에는 아직도 열정이 식지 않았다. 특히 후학들의 탈 제작 전시회에는 빠짐없이 참석한다. 그러곤 격려을 아끼지 않는다. 그런 선생의 모습에서 50평생을 오로지 한 길로 매진해 온 장인정신이 묻어난다. 너무 쉽게 모방하고 너무 빨리 입신양명하려고 발버둥치는 오늘날의 세태에 선생의 존재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 사진제공=최경헌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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