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본 증곡 선생

정봉길 경성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무극인 2019. 10. 24. 13:48

 증곡 천재동 선생님을 생각하며.......

참 예술가이신 증곡 선생님을 처음 뵙기는 지금으로부터 약 15년 전 민주 교육을 주장하다 희생된 전교조 부산 지회장이 머물고 있던 베네골을 방문하면서 시작되 었습니다. 제일 원로이신 증곡 선생님을 비롯하여 12인승 봉고차엔 박기찬형, 예 술인, 원로음악인, 사업가, 몇몇 여성이 저와 같이 빽빽이 합승하여 찌는 여름을 한적한 베네골로 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차 속에서 미담을 하시던 선생님을 뵙고 자상한 아버님으로 또는 섬세한 교장 선생님, 부담 없는 어르신, 순박한 동안을 한 선생님 등 표현할 수 없는 정감을 느꼈습니다. 예술에 문외한인 제가 선생님의 매력에 끌려 문득 차 속에서 탈에 대해서 질문을 하였습니다.

탈에 대해 대가이신 선생님께서는 탈을 제작하실 때 어떤 소재로 하십니까?” 라고 요. ?자네는 불교문화에 108 번뇌를 아는가? 그 속에 나의 작품이 수천, 수만 개 의 탈로 승화되어 나오네?라고 하셨습니다. 어렵게 설명하지 않고 쉽게 가까이 와 닿도록 자연스럽게 대답하시는 선생님을 보고 웬지 선생님이 계시는 곳엔 늘 가고 싶어졌습니다. 그 후 두레정신을 소박하게 빚은 토우전, 언제 어디서나 함께 정답 게 불렀던 동요를 주제로 한 동요화전, 달노래, 별노래, 새노래 출판기념회장, 동래 야류를 지도하시는 민속관 등 선생님이 계시는 곳에 언제나 뛰어가곤 하였습니다.

언제나 문화유산의 중요함을 자손들에게 보존계승전수시키기 위해 정성을 쏟으시 는 선생님을 뵐 때, 대학에 있는 저는 무얼 하고 있는지 크게 느끼게도 하였습니 다. 몇 번의 놀러오라는 말씀에 문득 댁을 방문한 적이 있는데 사모님께서도 제자 리 매김을 하고 계시면서 내조를 하시는 모습이 세간살이를 하는 어린 소꼽친구처럼 맑고 아름답게 보였습니다. 헤어질 때 대문간에서 여비를 꼭 챙겨 주시던 사모 님은 고향 부모님 댁을 다녀 올 때의 정과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20세기를 보내는 캘린더 앞에서 탈의 틀을 벗어난 참 소박한 탈을 가지신 선생님 내외분의 건강과 행복을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천년의 재동을 건 21세기를 맞이하면서 선생님 예술의 세계가 새 밀레니엄에 널리 퍼지시길……… 

                                   - 경성대학교 경영학과 정봉길 교수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