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기다
부산시 주체로 『풍어제』가 주로 송도 해수욕장에서 연중행사로 베풀어졌다. 행사 때마다 시(市)에서는 나에게 무보수 봉사 협조 의뢰가 온다. 한 해는 해수욕장 유람 보트를 이용하여 용(龍), 백조(白鳥) 등으로 만들어서 바다에 띄우는데, 이를 제작하여 달라는 것이었다. 무당(巫堂) 김석출(金石出, 제82호동해별신굿보유)의 풍어제 굿에 세울 깃발들을 백사장에 눕혀두고 모래구덩이를 파는 동안에 오 가는 사람들의 발길에 채인 모래가 그 깃발들은 물론 같이 놓아둔 태극기도 묻어버렸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깃발들을 바르게 세우고 앞으로 있을 행사 준비를 끝마쳤다. 이튿날 국제신문 지면에 천재동 국기 모독이란 기사가 크게 보도되었다.
어느 해 장소가 바뀌어 미포리(尾浦里) 앞 바다에서 풍어제가 펼쳐질 때인데 큼직한 발동선을 용(龍)으로 분장한다면서 선체의 모양과 크기 등을 도안한 것을 시(市)에서 담당자가 보내왔다. 몇 날을 소비하면서 고생 끝에 용모양 세트를 제작하여 행사 당일 현장에 도착하였는데 대기하고 있는 선박은 계획하였던 그 도안상의 선박이 아니라, 보다 크고 형체가 완전히 다른 선박을 몰아다놓은 것이었다. 피치 못할 사정으로 딴 배로 대처하였다는 것이다. 뜻대로 작품이 완성될 리가 만무한데도 행사 담당자인 시청 문화과 K 주사는 내 잘못이라면서 대중 앞에서 모욕을 주었다. K 주사는 이런 일이 한두 번 뿐만 아니라 수차에 걸쳐 나를 모욕했지만 나는 한 마디 대항한 일이 없다. 자기 자신의 잘못을 깨치지 못하고, 자질도 부족한 공무원 때문에 얼마나 많은 시민들이 피해를 입을까? 생각하면 할수록 K 주사에 대해서 측은지심(惻隱之心)이 생길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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