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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서정자의 회고

◎ 아내의 회고(回顧) 우리 민족의 암울했던 時代에 살다간 아내의 부친 인간 서진문(徐鎭文)의 일면을 회고하도록 지면을 할애(割愛)함은 아내 서정자(徐湞子)가 그의 과거사를 더 잊어버리기 전에 어려서부터 직접 겪었던 일과 장모와 장인 그리고 주변 어르신들로부터 들은 것들 중에 기억하고 있는 것에 준거하여 기록으로 남겨 후손의 삶에 작은 지침(指針)이라도 되리라 기대하기 때문이다. 『아버지 서진문(徐鎭文)을 회고(回顧)하며』 아버지 徐 鎭자(字) 文자(字)께서는 1901年 8月 28日 蔚山郡 東面 日山里 209番地에서 達城 徐氏 집안 父 徐 章자(字) 寔자(字)와 母 柳 南자(字) 蓮자(字) 사이에 五男 一女 중 長男으로 태어났으며, 當 六歲가 되었을 때 伯父 元자(字) 埈자(字), 백모(伯母) 成 甘자(..

서진문 요코하마에서 성세빈을

서진문(1901~1928. 증곡 천재동의 장인)이 명치대 재학 중인 1922년에 요코하마(橫浜)에서 성세빈을 만나다. (이 사진은 1993년3월17일 일본에 거주하는 성세빈의 아들 성덕영께서 사연과 함께 서진문의 외손자 천영배에게 우편으로 보내왔습니다만 내용의 사연은 서정자앞 이었습니다.) 1993.3.17 천재동씨 댁내 서정자 귀하 일본 동경 성덕영 나 (유년 이름 돌뿔)도 1919년 생이라 금년에 74세가 됩니다, 옛 사진장을 뜰쳐 보니 우연히 나의 아버지(성세빈)와 서진문 아제의 사진이 나왔습니다. 너무나 기쁘서 복사하여 한 장을 보냅니다,~~~ 부부 간에 사이 좋게하며 몸 조심하여 오래 오래 살아 주시오. 꼭 좋은 날이 올것입니다.~~~ 성덕영 서정자 귀하 '어머님이(윤상필) 작년 음 4월에 92..

133.촌놈 핫바지

촌놈 핫바지 중요무형문화재기예능보유자들이 명예를 스스로 지키자는 것은 물론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맞설 수 있는 단합회를 만들고자 1970년대에 가칭 「중요무형인간문화재총연합회」란 간판을 내 걸고 당시 중요무형문화재제19호 「선소리 山打令」 예능보유자 이창배를 회장으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당국은 우리들의 이러한 행위에 당황한 나머지 탄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회장은 탄압에 맞서 싸우다 견디지 못하고 부득이 사퇴하고 말았지만, 이에 분노하여 자진해서 회장직을 맡아 나선 사람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제26호 「영산(靈山)줄다리기」 예능보유자 조성국(曺星國)이었다. 당국에서는 보유 자격을 취소한다느니 기타 여러 가지 방법을 다하여 탄압하였지만 회장은 「벌을 줘도 감수하겠다」면서, 고향에 논밭을 팔아서(?) 상경하여..

울산이 낳은 멀티예술가 증곡 천재동

울산제일일보 | ujeil@ujeil.com[이정호칼럼]울산이 낳은 멀티예술가 증곡 천재동 증 곡 천 재 동 (사 백 허 종 배 촬영) 참 반가운 논문 한 편을 정독했다. 증곡(曾谷)의 제자(제자가 아님,오류입니다.)이며, ‘천재동연구소’ 소장인 이기우가 쓴 라는 제명의 논문이다. 울산발전연구원에서 발행한 ≪2017 울산학 연구논총≫에 실린 네 편의 논문 중 하나인데, 울산 방어진 출신인 멀티예술가이자 만능엔터테이너인 천재동(千在東, 1915-2007) 관련 글이다. 연구자는 뛰어난 예술가였음에도 그의 업적이 제대로 알려지고 있지 못함에 대한 아쉬움과 증곡을 고향인 방어진을 중심으로 문화콘텐츠화해야 한다는 논지의 글을 담고 있다. 오래전에 시내 어느 전시실에서 본 천재동의 토우 전시회는 무척 인상 깊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