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4. 동양의 수산왕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

무극인 2007. 11. 22. 13:43
   동양의 수산왕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

 방어진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 하야시가네(林兼) 수산어업회사를 설립한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는 16세의 나이에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무일푼으로 건착선원(巾着船員)이 되어 방어진에 첫발을 디디게 된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세계적인 하야시가네(林兼) 수산어업회사를 설립하면서 본사를 방어진에 두었다, 훗날 본사는 일본으로 옮기게 되었고 당시 동양의 수산왕이라 불렀다. 나까베는 일본에 거주하면서 일년에 한번쯤 부인을 동반하여 방어진을 방문하였다. 1미터 60센티 정도의 작은 신장에 특이한 것은 귀가 보통 사람의 곱절이나 되는 듯 하였는데 보행 중에 흔들렸다. 의상은 양복을 정갈히 입었고 부인은 기모노 차림으로 나까베 보다 신장이 훨씬 컸지만 남편의 신장을 의식하여서인지 등을 구부린 자세였다. 나까베 뒤를 따르는 회사 간부들 등 수행원들은 양복을 입었는데 연미복 차림도 있었다. 방어진 거리에 나타나면 일인들은 모두가 길가에 머리를 조아리고 엎드렸다.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하였는데 마치 천황을 대하듯 하였다. 나의 생가 앞의 한 지붕 밑에 여덟 세대가 살고 있는 ‘핫깽나가야(八軒長屋)’라고 하는 하야시가네(林兼) 직원 사택(社宅)이 있었는데 세대주 여덟 명이 각각 건착선 한 척씩을 책임지고 있으면서 세대주당 재산이 2000석(石)이라 하였으니 본 장옥 전체 재산이 16,000석이나 되는 거부(巨富)였었다. 사이또오(齊藤)총독이 나까베의 입지전적인 성공담과 공적을 크게 인정하여 방어진심상고등소학교(方魚津尋常高等小學校)에 공원을 조성하면서 그의 공적비도 함께 세웠는데 해방과 동시에 주민들에 의해 강제 철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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