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6. 고등어 잡이 건착선(巾着船)

무극인 2007. 11. 26. 14:29
 ◎고등어 잡이 건착선(巾着船)

 방어(?魚)에 못지않게 앞 바다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 것이 고등어이다. 동양의 수산왕으로 알려진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가 16세의 어린 나이에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입항하여 방어진에 첫발을 내 디딘 것이다. 훗날 성공하여 ‘하야시까네(林兼)’란 상호(商號)로, 마크가 표시된 깃발아래 수많은 기동선(機動船)으로 본격적인 고등어잡이 회사를 방어진에 세움으로써 기존 도래인(渡來人)과 새로 유입(流入)된 수많은 일인(日人)들로 인하여 방어진은 완전 왜색(倭色) 왜풍(倭風)에 휩싸이게 되어 우리들은 방어진을 망허진(忘虛津)이라 불렀다.

 당시 고등어잡이 전문선(專門船)인 건착선(巾着船)은 4기동(機動) 더블 발동(發動)으로 어군(魚群)을 좇아갈 수 있는 속도를 지니고 있다. 배 앞머리에 망대를 설치하여 줄사다리로 오르내리도록 되어있는데 선장보다 높은 계급의 ‘오끼아이(沖合: 어군을 탐지하는 사람)’가 망대에 올라 어군을 탐지한다. 고등어 떼가 발견되면 파도 색깔에 따라 양(量)을 예측하고 깃발로 신호를 하면 비로소 선장과 30여 선원들의 활약이 일사불란(一絲不亂)하게 전개되는 것이다. 다른 일반 배와 다른 점은 뒤쪽 갑판이 청마루처럼 넓은데 그 이유는 많은 어망(魚網)을 실어야 되기 때문이다. 고등어가 그물에 갇히면 그물의 끈을 조여서 고등어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는데 이렇게 끈으로 조였다, 풀었다 하는 주머니를 건착(巾着: 긴짜꾸)이라 하고 우리말로하면 ‘주머니 배’가 된다. 이 건착선(巾着船)의 또 다른 이름은 ‘시바리 배’이고 ‘시바리’란 ‘조른다’ 는 뜻이다. 사람들은 건착선원(巾着船員)을 나쁘게 말 할 때 ‘시바리 뱃놈’이라 하였다.

 건착선(巾着船)이 어로(漁撈)에 나가면 항상 운반선이 뒤를 따른다. 고등어를 그물로 잡아 올리면 즉석에서 운반선에 풀어 싣고 기지(基地) 방어진 항구에 달려와서 내려진 고등어가 부두에 산더미처럼 쌓인 것을 볼 수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수많은 아낙네들이 예리한 식칼로 경쟁이라도 하듯 신속한 동작으로 고등어 배를 따서 내장은 따로 모으고, 고기 살은 곧장 바닷물 속에 던진다. 물 속에는 거대한 그물 족자가 펼쳐져 있어 던져진 고기를 인부들에 의하여 깨끗이 씻은 다음 건져 올려지면 소금에 절인 후 마지막으로 볏가리 같이 쌓아 올려 대형 보(褓)로 덮어둔다. 소금에 잘 절여진 간 고등어는 하물차(荷物車)에 실려 전국 방방곡곡으로 팔려나가 밥상에 오르게 된다. 따로 모아둔 고등어 내장은 아낙네들이 부수입으로 젓갈로 담아 두었다가 김장김치 양념이 되는데 그 인기가 대단하여 경상도 지방의 명물이 되었다. 작업 현장에는 바닥이 항상 생선 핏물로 흥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