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5. 방어진과 방어

무극인 2007. 11. 26. 14:16
  ◎방어진과 방어

 내가 알고있는 방어진(方魚津)이란 지명은 과거 지도상에 이름도 없었던 곳이 어항(漁港)으로 개척되자 지명(地名)을 필요로 한 나머지 1907~8년경 행정상 경상남도 울산군 동면 방어진(慶尙南道 蔚山郡 東面 方魚津)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방어진이란 명칭을 두고 이런 저런 설로 고집스럽게 주장을 하지만 하나같이 납득이 가지 않는다. 어릴 적에 할아버지들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생선(生鮮) 방어(魴魚) 즉 숙성된 방어가 잡히는 나루터(津)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이라 한다. 일인(日人)들이 손꼽는 조선 3대 어장은 신포(新浦: 明太)와 영일만(迎日灣: 鯖魚) 그리고 방어진(方魚津: 魴魚)이다.

 일인(日人)들이 다시없는 호식물(好食物) 중에 명태와 청어의 알젓인데 명태가 한류(寒流)를 타고 오-쯔크 해협을 거처서 계속 남하하여 신포 앞 바다에 당돌했을 때에 완전 만삭(滿朔)됨으로 신포가 3대 어장 중의 하나요, 청어도 영일 앞 바다에 왔을 때가 명태와 같은 사정으로 3대 어장 중의 하나가 되지만 방어의 경우는 다른 점이 알젓보다 횟감으로, 지져서, 구워서, 내장탕 등등으로 뼈만 버리고 요리하여 먹기를 더 없이 좋아하는 그들에게는 최상급의 어종(魚種)이라 거액(巨額)에 팔려 나간다.

 특이한 것은 일인(日人)들은 빈부(貧富)를 막론하고 설날이 되면 송죽(松竹)을 현관 좌우에 세워 놓고 현관문 위에 볏짚을 뭉쳐 꼬운 것에 유자(柚子)를 꽂아 붙여 놓는다. 현관문을 열고 석 들어서면 홍(紅), 청(靑), 백색(白色)의 대매(大枚: 둥글고 큰떡)와 생선 방어가 통째로 제상에 잘 차려 놓고 조상 신(神)께 고사지내고 가족의 수명다복(壽命多福)을 기원한다. 그들은 각 가정마다 경쟁적으로 더 큰 방어를 차려놓고 세배 객에게 자기 가문을 자랑으로 과시한다. 이렇게 귀중하게 여기는 방어가 12월 말경 즉 연말이 되면 클 대로 커서 방어진 앞바다 대부망(大敷網)에 걸려서 잡혀 올라온다.

 12월 하순께면 송아지만큼이나 커서 다 자란 방어들을 잡기위해 일산동에서 바라다 보이는 울기등대(蔚崎燈臺) 끝자락 바로 밑 바다 속 방어 떼가 다니는 길목에 대부망(大敷網)을 거대하게 깔아 설치해 놓고, 방어 떼가 걸려들면 목선(木船) 수 십 척이 대부망 가장자리에 원을 그리며 둥글게 에워싸고 중심을 향해 그물을 조이면서 모이면 비로소 방어를 떠낸다.  

 일본 사람들이 3대 어장 중에 방어진 방어를 최고로 손꼽은 만큼 이 황금어장에 마수의 손길이 닿을 수밖에 없었지만 다행스럽게도 오랫동안 꿋꿋이 어장을 지켜온 사람은 제 2대 동면(東面) 면장을 지낸 화잠리(花岑里)의 갑부(甲富) 이득우(李得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