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에 대한 글,기타

59. 인간 천재동

무극인 2008. 11. 18. 17:01

♥천재동 선생님의 영전에

해학과 웃음과 재치로써 영글어 갈 하늘나라 예술세계를 그립니다 

주경업(서양화가·부산민학회장)

지난해 2월 '부산의 꾼·쟁이'를 집필하면서 부산 성지곡 선생님 댁을 방문했을 때 현관 앞까지 마중나와 서 계시던 호호백발 두 양주님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작업대 위에 점토를 붙이고 조각도를 다루시면서 '이 흙이 와 이리 되노'라는 핀잔에 무엇이 또 잘못 되었는지 챙겨주시려고 다가서던 사모의 그윽한 눈빛은 예술가 지아비를 사랑하는 여인의 지고한 모습이었기에 우리는 행복에 겨워했습니다만, 이제 유명을 달리하신 천재동 선생님의 부음 소식에 가슴이 아픔으로 미어집니다.

부산 예술의 큰어른이셨고 부산 민속의 큰 언덕이셨던 천재동 선생님.

동래탈 제작을 시작으로 세상 살아가는 이야기를 창작탈로써 풀어보려 했던 선생님의 모습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리고 토우로 이어지는 작업은 탄탄한 소묘력을 바탕으로 한 동심세계였어요. 만년에는 청년시절의 꿈이었던 그림 세계로 환원하는 작업의 세계가 웃음 천국을 방불케 하는 민속그림 세계였고요.

작업대 앞에 앉아계신 선생님의 혼이 손끝에 모아질 때면 안경 속의 눈이 광채를 빛내며 다물어진 입은 한 일자를 깊이 그렸었지요.

바야흐로 백수를 목전에 둔 노작가의 불타는 창작 열정을 우리가 보고 있음입니다. 우리는 이를 사랑하고 존경해 왔습니다.

편치 않으신 몸으로 사모의 부축을 받으며 전시회장에 들어서시면서 그 특유의 환한 웃음을 띠시던 다정다감한 모습도 우리는 잊을 수가 없습니다.

 

존경하는 천재동 선생님.

이젠 선생님을 선생님의 작품 속에서나 만나뵐 수 있게 되었지만 선생님께서는 새로운 세상 하늘나라에서 새로운 예술세계를 펼치기 위해 분주하시리라 믿습니다.

평생을 그렇게 바쁘게 사셨던 어른이셨기에 선생님을 사랑하고 존경하는 많은 후학들이 영전에 향을 피우며 선생님의 명복을 빌어 올립니다.

교육자, 연극연출자이기도 하셨던 선생님.

민속을 널리 펴서 우리에게 민속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신 선생님. 탈과 토우와 그림으로 전통예술세계를 아우르던 천재동 선생님을 우리는 마음 속 깊이 아로새겨 길이길이 기억할 것입니다.

타고난 해학과 웃음과 재치로써 새롭게 영글어 갈 하늘나라의 예술세계를 그려보며 삼가 영전에 이 글을 바칩니다.

국제신문 입력: 2007.07.29 20:58

 

 천재동= 지난 7월 92세의 나이로 별세한 증곡(曾谷) 천재동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보유자(인간문화재)로 부산이 자랑할만한 인물이었다. 그는 음력 정월 대보름을 전후로 연중무사와 풍년을 기원하기 위해 장터나 시냇가 등 야외에서 벌이던 동래야유 탈바가지에 해학과 풍자를 입혀 이 나라의 혼을 각인한 장인이었다. 또한 연극 토우 동요화 등 여러 방면에서 화가 연극인 공예가로 활동하며 우리 고유의 토속적인 정감과 아름다움을 재현하는데 평생을 바쳐온 예인이었다. 그래서 동래탈 할배, 말뚝이 할배, 탈바가지 천옹, 탈쟁이 천선생, 天才童(천재동)이란 별명으로 불렸다. 1915년 울산에서 태어난 고인은 극단 '바다' '갈매기' '한나라' '부산극회' '마당' 등을 창단해 공연활동을 펼치기도 했다.(국제신문)

 

 

 

오랑께롱 간께롱/정지 문앞 간께롱/누룽지를 준께롱/묵은께롱 꼬신께롱/또 줄랑께롱 안준께롱/운께롱 준께롱/묵은께롱 꼬신께롱'

주전부리할 게 없던 시절, 부엌 문 앞에서 칭얼대는 코흘리개는 우리들의 어릴 적 모습이다. 누룽지를 얻어먹고 있는 토우(土偶:흙인형) 옆에 있는 작은 돌멩이에 이 노래가 씌어있다. 통통 튀는 리듬과 깜찍한 발상에 웃음이 절로 난다.

1970년대 초 증곡(曾谷) 천재동 선생 자택에서 이 같은 토우와 노래를 본 만화가 박재동은 "선생이 얼마나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지 가슴이 저릴 정도였다"고 회고했다.

토우에 몰입했던 증곡은 1965년 10월 부산일보 프레스홀에서 동래야류 공연을 본 뒤 '바가지 탈'에 빠졌다. 25년간의 교원생활도 접고 오로지 탈에 예술혼을 불어넣었다.

"말뚝이 코는 팔뚝만하고 한쪽에 2개씩 난 콧구멍은 하얗게 채색돼 남자 양물을 상징하지. 반월형의 입, 빨간 입술, 이는 좌우가 달라 양반들의 '이중감정'을 표현한 것이야…."

동래야류에서 양반의 못된 행실을 질타하는 말뚝이 탈 재현에 10년이 걸렸다. 1930년대에 말뚝이 역을 맡은 곽상훈 전 국회의장의 고증을 받았고 국립중앙박물관 창고에서 1930년대에 만든 말뚝이 탈을 찾아내 원형을 재현했다. 말뚝이 탈뿐이 아니다. '동래야류 길놀이 행렬 순도'' 동래부사 충렬공 송상현공 군사행렬도'를 도해화(圖解畵)하고 동래지신밟기, 동래학춤 등 민속의 전승발전에 쏟은 증곡의 열정은 감탄스러울 정도다.

중요무형문화재 18호 증곡은 최근 '아흔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라는 회고록을 발간했다. 올해 92세로 백수를 바라보는 그의 왕성한 의욕은 후학들의 귀감이다. 마침 오늘 오후 6시 크라운호텔에서 출판기념회도 열린다. 우리는 평소 원로 예술가에 대해 어떤 예우를 하는지 되돌아보게 된다.부산일보 박창호수석논설위원 p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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