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OK 즐겨읽기] ‘말뚝이 탈’ 뚝심 닮은 장인 18인을 만나다 [중앙일보2009. 5.30] 논쟁중인 댓글 (0)
일제시대 맥이 끊긴 민속가면극 ‘동래야류’의 복원에 힘쓰다 종내에는 말뚝이 탈의 제작까지 손대 중요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던
고(故) 천재동 옹의 생전 작업 모습. [현암사 제공]
관련핫이슈[2009 Section] BOOK지난 행복한 책읽기 기사 보기
장인
박태순 글· 김대벽 사진
현암사, 376쪽, 1만8000원
“큰 바가지는 엉둥이로 웃고/작은 바가지는 배때지로 웃고 있다/千在東의 바가지가 그렇듯이/밝은 날도 흐린 날도/절대로 절대로/울지 않는다”
‘꽃’의 시인 김춘수가 말뚝이 탈을 소재로 쓴 ‘절대로 절대로’의 한 구절이다. 절절한 시어와 함께 이름 석 자를 올린 이는 동래야류-탈 제작 기능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 18호였던 고(故) 천재동 옹이다.
천 옹의 이야기는, 소설가이면서 우리 땅과 문화에 관심을 쏟아온 지은이가 1980년대 중반 발품을 팔아 찾아낸 18개의 ‘보석’ 중 하나다. 전통문화에 대한 지식과 애정은 남다르고 삶의 향기와 문화, 그리고 역사를 우려낸 그 글은 그윽하다. 그가 문화재전문 사진작가와 더불어, 60년 넘게 갓을 만든 제주 큰애기에서 서울의 ‘연 박사’까지 다양한 전승공예 장인들을 만나 이야기를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야류는 탈춤, 산대놀이, 오광대 등으로 불리는 민속가면극을 이르는 경상도 사투리다. 부산에서는 들놀음이라 했는데 이것이 한자로 ‘야유(野遊)’가 됐고 다시 야류로 불렸다. 정월 보름 전후에 행해진 동래야류는 개화기 때 시작됐는데 전문 연희자가 아닌 ‘아마추어 농민’들이 마당판을 엮어간다는 특성이 있다.
천 옹은 가업을 계승한 것도, 어릴 적에 인연을 맺은 것도 아니었다. 일본 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전공한 화가로서 젊은 한때 연극·청년운동· 스포츠에 관여한 지역문화운동가였다. 60년대 중반 극단을 만들어 순회공연을 다니다가 동래지방의 가면극과 조우하는 바람에 그의 운명은 바뀌었다. 30년대 일제의 폭압으로 중단된 ‘동래야류’의 원형을 되살리는 데 남은 생을 온전히 기울이게 된 것이다. 대본과 장치 마련은 물론 연출까지 직접 공연한 그는 관계인사를 찾아다니고 자료를 뒤져 고증을 하다가 결국 말뚝이 등 탈 제작까지 손대기에 이르렀다.
지은이는 천 옹과, 그가 만든 말뚝이 탈에서 절망과 고통마저도 웃음으로 만든 ‘한국인의 뚝심’을 읽어낸다. 그런가 하면 전통적 민중상과 현대 예술가의 뜨거운 대결, 나아가 전통과 창조의 만남이라는 의미도 짚어낸다.
귀한 글이고 반가운 책이다. 지은이가 부지런을 떨지 않았더라면, 지금은 대부분 세상을 떠난 1세대 무형문화재들의 본 모습을 제대로 만나기 힘들었으리라는 의미에서 귀하고, 모 사보(社報)에 실렸던 글이 뒤늦게 책으로 묶여 나왔기에 반갑다.
한편으로는 양태장 고정생 할머니의 따님이 “혹 세상을 떠나시더라도 손 하나만은 무덤 밖에 내놓고 가시라”했다는 말이 더욱 가슴에 와닿는, 안타까움과 아쉬움을 주는 책이기도 하다.
김성희 기자
'증곡에 대한 글,기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송영명 이사장 (0) | 2017.05.26 |
---|---|
천재동씨의 탈 (0) | 2011.04.26 |
2. 올해 떨어진 울산문화 큰별 증곡 (0) | 2009.04.21 |
1. 증곡 선생님 회고록에 붙여 (0) | 2009.04.21 |
59. 인간 천재동 (0) | 2008.11.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