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동이 왔나!?”
해방 전후 가시화(可視化)되기 시작한 부산 미술계를 격려하기도 하고 비판도 하면서
미술계의 밑거름을 다진 평론가 이시우는 울산병영(蔚山兵營) 출신으로
나와는 동향이라 해서 각별히 친한 사이였다,
1918년생인 그는 나보다 세살 아래였는데,
평소 좀처럼 화를 내거나 필요 이상의 말을 하는 경우가 없이
언제 어디서나 얼굴만 맞대면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먼저
“ 재동이 왔나!”하면서
얼굴에 새겨지는 잔잔한 미소와 작은 말소리는 항상 다정하게만 들려왔다.
광복동(光復洞)에 있는 단골집 부산다방에
언제나 차 한 잔 앞에 두고 홀로 앉아
마도로스파이프를 물고 있는 모습은
사색(思索) 그 자체(自體)이다.
하루는 나와 단 둘이 있는 자리에 송혜수 화백이 들어왔다.
이시우는 서슴치않고
“혜수 오나!”하는 것이다.
“이놈아! 혜수가 뭐냐!?”하고
불쾌하다는 어조로 송화백이 내뱉었다.
다섯 살 위의 연배로서 듣기 싫은 것이 당연한 것이다.
“니, 혜수 아이고 뭐꼬?”
“이놈아, 선후배도 모르고……”
“이름은 뭐 때문에 있노? 부르라고 있는 거 아이가? 뭐가 나뿌노?”
“…….”
이시우가 경남고등학교 근무할 적에
학교장이 이시우와는 동향(同鄕), 같은 동네 출신이었다.
학교장은 나와는 동갑이요, 사돈 간이고 이시우 보다는 세살 위였다.
교내에서나 교외 어디에서나 업무시간 이지만
공식(公式) 석상(席上) 외에는 학교장을 보면
“교장 보레~이 바쁜 일이 생겨 내 좀 나간 데이~”하는 것이다.
상사에게도 정답게(?) 대하는 이시우를 아는 사람은 다 알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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