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58.길포 박원표(吉浦 朴元杓)선생

무극인 2008. 11. 24. 21:06

    * 길포 박원표(吉浦 朴元杓)선생

 향토 연구에 앞장서신 길포 선생께서의 향토 사랑이야말로

선생의 위를 점(占)할 자가 없을 만큼 매우 훌륭하였다.

그래서 선생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존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선생 또한 많은 사람을 사랑했는데,

그 많은 사람 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어느 날 송도 암남동 자택에 갔을 때에

찬찬하게 보이는 부인 강말념(姜末念)여사에게

나를 너무나 과찬하며 소개를 하여 주시던 것이 기억난다.

또 지금 한국은행 뒤편 은행 집회소에서

사무를 보고 있을 때 몇 차례 찾아 뵌 적이 있었던 자리에서

사학자 선생님들을 소개 받은 적도 이었다.

선생께서는 만날 때마다 내 생활 처지를 걱정하여 주셨는데

한번은 영도(影島) 모 공장 사장의 심부름으로

직원 한사람이 탈을 사러 왔다면서

의외로 많은 대금을 건너 주기에,

작품 대가 외의 잔금을 내 주었더니,

그 직원은 그대로 드리게 되어 있다면서 고집하고,

나 또한 의외의 부당한 돈은 받지 않겠노라고

옥신각신 끝에 내 고집이 성립되고 말았다.

훗날 길포 선생께서의 말씀이

  “공장 사장과 사전에 이야기가 되어 있었던 것인데,

   왜 그런 고집을 부렸느냐?

   잔돈을 내주지 말고 그 값에 알맞은

   작품을 줄 수 있는 머리도 있어야 돼”하시며

나를 몹시 나무라셨다.

선생이 당뇨병으로 서면(西面) 전포동(田浦洞)

성모병원(聖母病院)에 입원 중 병문안 갔더니

누워 계시던 선생은 기어이 일어 앉아 내 손을 잡고

   “내 이렇게 누워 있어도 와주는 사람 없는데,

     천선생이 와주니 내 참 기쁘다” 하시는 말씀에 나는 눈물겨웠다.

내가 2001년 4월부터 동의의료원(東義醫療院)에 입원해 있을 때

한번쯤 와줄 수 있는 사람이 오지 않아 원망스러웠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사람이 와 주실 때는 눈물이 날 만큼 고마웠다.

병석에 누워 있는 환자는 모두가 그런 심정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