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인 행사에서 염 교수와의 만남)
(가운데 묵해 선생)
* 묵해(默海) 김용옥(金容玉)
서예가 묵해 선생은 생존시에 공석때나 사석때나 어디서나
동갑이란 이유로 나와는 아주 가까이에서 지낸 만큼 정다운 사이였다.
1915년생은 토끼띠이기 때문에 자식이 많다면서 싱긋 웃곤 하였고
주변에 동갑내기가 흔하지 않다면서 6월생인 묵해는
1월생인 나를 앞으로 형이라 부르겠다고 하였다.
그 후로 서로 교우관계가 더욱 돈독해 지면서 만나는 일수도 잦아졌다.
어느 땐가 모임이 있어 참석하였더니 염태진(廉泰鎭) 교수도 와 있었다.
대체로 노경(老境)의 인사들이 많았던 탓인지
나이에 대해서 이런 저런 말들이 재미있게 오가는 중에
입담이 좋은 묵해가
“ 이 자리에 우리 갑장이 셋이나 있는데 나는 6월××일 생이고
천 선생은 1월××일 생이라 흔하지 않는 동갑이라서
오래전부터 천 선생을 형이라 불러왔는데,
오늘 잘 하면 동생 한 분을 얻을는지를 누가 알겠소!
여보! 갑장 염 교수! 생일이 몇 월 며칠이요?”
평소에 말수가 적고 점잖은 염 교수는
답변은 하지 않고 입가에 미소만 머금고 있었는데
주변 사람들이 흥미 있다는 듯이 시선들이 염 교수 쪽으로 모아졌다.
“이렇게 있을 때가 아니라 형이 나서서 알아 볼 의무가 있잖소!
형이 한번 물어보소.”
묵해는 대단한 일처럼 다그쳤다.
염 교수는 창문을 열고 창 밖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뒤돌아서더니
아주 나지막한 소리로
“내 생일은 1월 3일입니다.
정확하게 말해서 1915년 1월 3일입니다.”하였을 때
놀란 듯 좌중한 사람들이 와~ 하고 소리를 질렀다.
더욱 놀란 묵해는 닭 쫓던 개가 지붕을 쳐다보는 격이 되어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짓더니,
순간 묵해답게
“오늘 맏형을 여러분이 지켜보는 앞에서 기쁘게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축화해 주십시오”하고는
정말 기쁜 표정을 만면에 띄면서 손을 앞으로 내 밀며 염 교수 쪽으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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