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71. 윤제(潤齊) 이규옥(李奎玉)과 백촌장

무극인 2009. 4. 1. 10:56

      * 윤제(潤齊) 이규옥(李奎玉)과 백촌장

 광복동 입구에서 채 100보도 못 가서 좌측 골목에 들어서면 왼편 두 번째 가게에,

갓과 곰방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갓집」이라 씌어져 있는 간판이 걸려져 있다.

이 갓집 주인은 미녀(美女)로 알려진 허(許)마담이 경영하는 통술집이다.

「갓집」에서 20보 가량 건너편 오른쪽에 「대학촌」주점이 있고,

대학촌 문을 나서서 우측으로 줄곧 20보 가량 가면 남포동 입구에 닿게 된다.

언제부터인지는 알 수 없으나 시인(詩人), 기자(記者), 문인(文人), 화가(畵家) 등

문화예술인은 물론 이들과 연관된 사람들이, 주머니 사정이 좀 넉넉하면 갓집으로,

대체로 그렇지 못하면 대학촌으로 모여들었는데 이 두 곳이

지인들과 정담을 나누는 사교장의 역할을 하기에 충분하였다.

나도 그들의 일원이 되어 약속의 만남 장소로 또는

특정한 사람을 만나고 싶을 때 이곳에 가면 틀림없이 만나 뵐 수 있는 곳이었다.

어느 날 갓집에 들어섰는데 청초(靑草) 이석우(李錫雨)가 매우 근심스런 표정을 하고 앉아있었다.

큰형님이 마침 잘 왔다면서,

    “작은형님 윤제(潤齊)가 만취(滿醉)된 채로 나가 행방을 모르겠는데

     틀림없이 어디서 실수를 하고 있을 지도 몰라 걱정이 됩니다. ” 하는 것이다.

마침 나는 귀가 길인 데다 혹시나 싶어서 대학촌에 달려가 보았더니

과연 청초 말대로 일본도(日本刀)를 빼 들고 있었다.

윤제는 곧 잘 취기가 돌면 옆구리 칼을 빼는 시늉을 하면서

누구든 차별하지 않고 처들어갈 듯 기세를 취하는 버릇이 있는데,

지금도 그런 자세로 구질구질하게 주인 백촌장을 괴롭히고(?) 있었고,

그러는 사이에 손님들은 한사람 두 사람 빠져나가는 것이었다.

말릴 틈도 없이 참다못한 백촌장은 재빨리 윤제의 목을 팔로 감아

주탁(酒卓)위에 머리를 눌러 놓고 목을 조아대는데 윤제는 빠져나오려고 사생결단이었다.

아무리 말려도 백촌장은 오늘 만큼은 더 못 참겠다는 표정으로 더욱 악을 쓰고 목을 조이는데,

바로 그 탁자 옆 벽에 윤제가 그린 죽림(竹林) 속의 「참새 100마리」 그림 금지(金紙) 액자가 걸려있었다.

흥분의 도(度)를 초월 하려는 백촌장에게 100마리 참새 그림을 가리키며 이거 누구 그림이냐? 하였더니,

이를 뿌득뿌득 갈면서 그림을 한참 쳐다보더니 슬그머니 팔을 풀고 뒤로 물러서는 것이었다.

윤제는 생기침을 연거푸 하면서 물을 찾았다.

그때 격앙된 상태가 지속되었더라면 큰 사고라도 나지 않았을까? 아찔한 순간이었다.

그 뒷날 100마리 참새 액자는 벽에서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