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무형문화재기예능보유자들이 명예를 스스로 지키자는 것은 물론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맞설 수 있는 단합회를 만들고자 1970년대에 가칭 『중요무형인간문화재총연합회』란 간판을 내 걸고 당시 중요무형문화재제19호 ‘선소리 山打令’ 예능보유자 이창배를 회장으로 선출하기에 이르렀다. 당국은 우리들의 이러한 행위에 당황한 나머지 탄압하기 시작하였는데 이 회장은 탄압에 맞서 싸우다 견디지 못하고 부득이 사퇴하고 말았지만, 이에 분노하여 자진해서 회장직을 맡아 나선 사람이 바로 중요무형문화재제26호 ‘영산(靈山)줄다리기’ 예능보유자 일봉 조성국(曺星國)이었다. 당국에서는 보유 자격을 취소한다느니 기타 여러 가지 방법을 다하여 탄압하였지만 회장은 “벌을 줘도 감수하겠다”면서, 고향에 논밭을 팔아서(?) 상경하여 서울거주 보유자 총집합 하에 빈틈없는 계획을 세우고 전국 무대분야 문화재를 총동원하여 제1차 사업으로 서울 무대에서 시위공연을 할 수 있도록 만반의 준비가 수립되었다. 천재동은 연출 총책임자로 선출되어 공연 일주일 전에 상경하여 조회장 딸 댁에 기거하면서 남으로는 제주도, 북으로는 춘천 등지에서 신청해 온 전통민속놀이들을 점검하고 분석하여 공연 순차를 정하였고 공연 당일에는 이미 정해진 중앙대학교 재학생 5명을 보조 요원으로 하여 연출을 돕도록 하였다. 공연장인 삼일극장에는 분장실이 하나인데 이를 여성 전용으로 하고 남성들은 극장 내 적당한 공간을 이용하여 분장실로 이용했다. 총 연출자인 나는 분주히 분장실을 오가며 프로그램 순서에 따라 실수 없이 무대에 오르도록 확인 지도하였다. 그러던 중에 승무 H 보유자는 결국 제자를 무대에 내보내고도 태연한 자세였다. 우리들의 뜻을 한층 높이고자 만든 이 행사에 적극적인 면이 부족하다고 판단된 나는 H 보유자와의 사이에 언쟁이 오고갈 때 안비치 보유자는 오라버님 말씀이 옳다면서 조언해 주었고, 도일 공연 중이던 어느 보유자는 이 자리에 출연하기 위해 비행기 편으로 급히 날아왔다면서 일본의 인간문화재 예를 들어가면서 비장한 어조로 H 보유자를 꾸짖기도 하였다. 판소리 고수인 K 보유자는 평소 주벽이 심하다는 것을 이미 알고 수차에 걸쳐 출연할 때까지는 음주를 삼가 해 달라고 신신 당부할 때마다 허리춤에 꽂아 놓은 북채를 보여주며 걱정 말라면서 장담하고, 손만 뻗으면 북을 잡을 수 있는 곳에 두고 있으니 염려 말라면서 자신 만만하게 말하였지만 무대에 등장할 때쯤에는 이미 술에 취하여 북을 둔 곳을 잃고 진행자는 물론 모두를 당황케 하였다. 마침 진도지역 출연자의 농악용 북이 가까이 있었기에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는데 이런 모두가 지금 생각해 보면 재미있는 추억이 되었다.
「한국 중요무형문화재 총 연합회」정기 총회(2002. 11. 27)에 참석한 회원이 만장일치로 채택한 당국에 대한 건의내용이 참석하지 못한 나의 의사와 백분 다를 바 없기에 부분적으로 인용하고 나의 소견을 조금 보태어 옮겨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중요무형문화재기·예능보유자』는 전통 기·예능 분야에서 탁월한 재능이 나라 안에서 제1인자라 하여 국가에서 인정한 사람이다. 과거 500년간 유교적 사고방식에 젖어서 그런지 기·예능인을 천시해서 “촌놈 핫바지”라고 불렀다. 내가 중요무형인간문화재로 지정 받은 1971년 후로 TV방송 출연이나 라디오방송 인터뷰에 응하였을 때 관계자들이 한결같이 놀라워하였는데 그 이유는 천재동이 응당히 무식한 촌 영감인 것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행정 관료들이 권위 의식으로 심한 관권의 간섭 등 더욱 경시해 왔고 그 호칭마저 보유자라 경시되고 천시하는 풍토가 만연되어 있으니 하루속히 법정용어를 「인간문화재」로 바꾸어 그 명예라도 인정해 주고 사명감을 느끼면서 전통예술을 전수하도록 격려 해주는 길이 인간문화재의 열정을 높여주는 최선의 방법이며 그렇지 않고는 후진을 양성할 수 없으며 만약 이대로 계속되다가는 우리의 전통예능과 기능은 단절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고 판단되고 또한 인간문화재 호칭도 쓰지 못하게 하면서 관공서의 최 말단 일용직이나 노동자의 최저 생활비도 안 되는 보유비로 보유자는 무엇을 먹고 전수 활동을 할 것이며, 제자를 길러 인간문화재로 추천할 권한마저 뺏기었는데 무슨 힘이 있어 제자들을 가르치며, 월 소득 50만 원 이하의 생활보호 대상자 진료권을 주는 제도는 인간문화재를 더욱 창피하게 하는 것이다. 힘도 없고 예우도 받지 못하며 천대받는 보유자를 따를 제자가 어디 있겠으며, 2003년 3월 현재 보유자 지정 자체를 반납하자는 인간문화재들이 많아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일본은 보유자에게 국가나 지방자치단체가 앞장서 명실 공히 인간국보의 예우를 갖추게 해 놓았으며 국가에서 직접 돈을 주지 않아도 생계에는 전혀 염려되지 않는 제도적 장치가 완벽하게 마련되어 최고의 예우를 받고 있는데 비하여 우리나라의 사정은 세인이 알고 있는 만큼 호화 사치스러운 보유자가 아님이 현실이다. 관과의 주종관계에 처하여 홀대받고 희망이 없는 보유자가 될 바엔 차라리 무형문화재 제도 자체를 폐지하는 것이 전통민속예술에 빠져들어 일생을 천대받고 가난하여 후회하는 새로운 희생자라도 예방해야 되지 않겠는가?
최근에는 전통민속 기·예능에 평생을 바치다가 늙고 병들었다고 별 보상 없이 ‘명예 보유자’’ 라는 새로 만든 제도 하에 명퇴시키려다 여론에 떠밀려 백지화하는가 하면 해당 분야의 기존 인간문화재들도 전혀 모르게 지정을 하여 인정을 받을 수 없는 엉뚱한 사람이 지정을 받음으로써 엄청난 물의가 야기되어 문화재청은 전면 중단한 일도 있었다. 당국에서는 전통문화의 중대성을 알고 있는 것 같은데 보유와 전승을 위한다면 잘못된 주먹구구식의 관행에서 하루속히 벗어나 실제적이고 체계적인 인식 전환과 함께 보유자들의 처우에 대하여 법적인 장치가 마련되어 개선되기를 손곱아 기다려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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