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독 초도순시
일제 강점기에 방어진은 조선 제일의 수산기지에다 일본인 거주 집단지였기 때문에 일제의 시각에서는 요충지에 해당하므로, 역대 총독들은 1박 2일 예정으로 방어진을 초도순시 방문하였다. 1936년경 어느 날 미나미지로(南次郞) 총독이 방문하여 묵은 ‘사노기야(讚岐屋)’여관 방에 일본인 유지들이 찾아들어 담소(談笑) 가운데 한 유지가 방어진 자랑을 하면서 ‘하시쯔메’ 소방대장 덕택에 1건의 화재 사건이 없었다면서 소방대장을 추켜세웠다. 그런데 총독이 떠난 이틀 후 방어진 은좌(銀座) 통(通)이라고 부르는 상가(商街) 맨 끝 일인(日人) 부부가 경영하는 일본 나막신발 상점에서 화로 불 가열로 시작된 화재가 순식간에 약 40여 가옥이 잿더미로 변하였다. 가옥 모두가 일식(日式) 목조 건물이었는데 날림으로 지은 집인데다가 한 지붕의 다세대(多世帶)건물이라 소방대는 손쓸 수 없어 보고만 있을 뿐이었다. 특히 장옥 한 가운데 대중목욕탕이 있었던 관계로 불이 지하에 저장된 석탄에 옮아 붙은 열기로 인하여 한 달 가량 사람의 접근이 불가능하였다. 그리고 얼마 후 서진(西津)에 있던 ‘하야시가네’ 영업부에 화재가 발생하였지만 다행으로 기름 저장 탱크에 옮아 붙기 직전에 진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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