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89. 일본인들의 야구열풍

무극인 2009. 9. 25. 16:24

    일본인들의 야구열풍

 동경(東京)생활하던 중 먼 친척이 되는 이학수(李鶴洙) , 동경도립공업고교(東京都立工業高校)를 졸업, 토목기사로 동경도청(東京都廳)에 근무하고 있는 한상조(韓相祚), 동경물리학교(東京物理學校) 재학 중인 김병희(金炳熙), 동양음악학교(東洋音樂學校) 작곡과(作曲科) 재학 중인 최덕해(崔德海), 그리고 김방우(金方佑)형제 등 동향(同鄕)인 외에는 아무도 교제하는 사람은 없었다.

나는 성공할 때 까지는 절대 금물 세 가지를 정하여 놓고 그를 멀리하면서 실천하고 있었다. 그 세 가지는 술과 담배 그리고 여자다. 다행스럽게도 내가 아는 동향인 중에서 이학수, 김방우 외에는 모두 술, 담배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천하는데 크게 도움이 되었다.

어느 날 이학수가 찾아와서 자기 양모(養母)인 전촌(田村)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가운데 네가 야구도 잘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시합이 있을 때만 고용 선수로 채용할 수 없을까? 하고 알아보라는 심부름으로 왔다는 것이다.

양모 남편 되는 분은 동경도내(東京都內) 생명보험회사(生命保險會社) 연합회(聯合會)의 인쇄물(印刷物)을 전속 인쇄하는 활판인쇄공장(活版印刷工場) 사장의 동생이었다.

본 연합회(聯合會)에서는 회사끼리 친목 야구시합을 종종 개최하였다. 회사들 중 제일생명(第一生命)에는 투수가 없어 고심하던 중에 내가 야구를 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청탁이 들어온 것이었다. 내가 좋아하는 야구인지라 승낙하고, 궁성 앞에 자리 잡고 있는 백색 네모 반질한 고층건물 제일생명사옥을 찾아 갔다. 그날따라 몹시 무더워서 땀에 온통 젖은 몸으로 커다란 현관문을 밀치고 들어서는 순간 충격적인 한파(寒波)에 되돌아 나와서 잠시 마음을 추스른 연후에 다시 들어갔다. 훗날 알게 되었는데 그것은 에어컨 효력이었다. 면담 결과 합격이 되었는데 이를 연유로 하여 나의 하숙소를 이학수 양모 집으로 옮기게 되었다. 동경(東京) 후락원(後樂園) 유원지에는 정구(庭球), 야구 등의 운동장 시설이 잘 되어 있었는데 야구장만 해도 20개소나 된다 하니 당시 일본의 야구에 대한 열기는 가히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구장을 한번 빌리려면 몇 달 전에 신청해야 한다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