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례한 두 사람
때는 전쟁 중이라 화구도 구입하기가 힘들었고,
특히 백색은 구하기가 더욱 힘들었으나 암거래로 비싸게 손에 넣을 수는 있었다.
모두는 대용품을 쓰고 있었다.
나는 고향의 형님으로부터 매월 60원씩 송금해 왔는데
담배, 술을 하지 않는 나로서는 용돈에 여유가 있는 관계로
진품 화이트가 항상 두개씩이나 화구 박스에 들어 있었다.
모델이 자세를 취해서 30분이 되면 모델 대에서 내려와 20분 동안 휴식을 한다.
다시 시작 시간이 되면 모델은 모델 대에 올라 전과 동일한 포즈를 취하고,
우리들은 일제히 캔버스에 집중하여 계속 작업에 임하는데,
정적(靜寂)된 분위기는 자연스럽게 몰입되기에 충분하였다.
토요일에는 크로키를 하고, 그리고 일주일 동안의 작품을 평가받는다.
18명 속에 한국인은 있을까? 있다면 몇 사람이며, 한국 어디에서 왔을까? 궁금하였다.
나는 내 이름을 그대로 사용하였기 때문에 한국인 인줄 누구나 알고 있었다.
얼굴 생김새로는 한국인을 구분해 내기가 어려울뿐더러
내색하지 않고 일본인 행세를 잘하니 알 수가 없었지만,
머지않아 두 사람을 찾아냈다.
모두들은 내가 쓰고 있는 유화용 백색 물감을 부럽게 여겼다.
대용품이 있었지만 저질인 관계로 효과를 내는데 충분하지 못하였다.
작업 도중에 간혹 “흰색 조금 빌릴 수 없습니까?” 아주 낮은 소리로 겸손하다.
“예, 쓸 만큼 쓰시오!”하면 그 사람은 필요할 만큼의 양을 짜 가는데,
내가 평소 눈여겨보아 온 사람은 나의 이해도 얻지 않고
“좃도식게이(조금실례)!”하고는 지나치게 많은 양을 불끈 짜는 것이다.
두 사람 다 그렇게 무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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