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138.희곡 『새똥골 장승』

무극인 2018. 11. 3. 23:38

 희곡 새똥골 장승

고향 울산에서 교직생활을 할 당시에 ?너 새똥골로 보낸다?는 유행어가 교직사회에 널리 입에 오르내리면서 각자 입장에 따라 간장을 싸늘하게 하던 시절이 있었다.

무능한(?) 교사에게나 혹은 장난으로 하는 말로써 인사발령에 있어서 보통좌천보다도 더 무서운 곳, 하늘도 보이지 않는 아주 깊은 산골에 있는 학교 즉 귀양지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새똥골? 본래의 뜻은 인체의 엉덩이 사이를 ??라 하고 항문을 ?똥골?이라 불렀는데, 아마도 그곳 지형의 형상이 인체의 그 부분과 유사한 데서 유래되어 불리는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

나무를 깎아서 손잡이를 기다랗게 만든 바가지를 자루바가지라 하는데 이 자루바가지를 만드는 생산지가 울산군 언양면(彦陽面) ○○리 속칭 ?새똥골?이라는 소문을 듣고 탈을 만드는데 좋은 재료가 되리라 생각되어서 날을 잡아 찾아가기로 하였다. 70년대 아직도 산손님(빨치산)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나 있을 때이었지만 단신용약(單身勇躍) 물어물어 버스로 언양 석남사(石南寺)입구에 하차하여 주변을 살펴보니 초원에 국군이 주둔하고 있었는데 지프차도 여러 대 눈에 띄었다. 운전병을 찾아 새똥골까지 운행을 부탁하였더니 4천원 이란 거액을 요구하기에 포기하고 보행을 결심하였다. 절 앞에 세워진 돌 이정표를 따라 경상남북도 경계인 태백산 지맥 산상을 올라가니 굽이굽이 노송들로 끝없이 울창하였다. 아무런 생각도 없이 거니는 산중은 적막하기만 하였다. 내 발자국 소리만 귓전에 조심스럽게 들으면서 문뜩 산손님이라도 나타날까 약간의 두려움을 가지고 산모퉁이를 돌아섰을 때 남루한 하얀색 바지저고리에 망태를 맨 사람이 불쑥 눈앞에 나타난 것이다. 서로가 놀래서 동시에 우뚝 서고 말았다. 조리(笊籬)를 만들려면 제철인 이맘때 싸릿대를 수취(收聚)해야 된다면서 자신도 같은 방향으로 가야하니 길동무가 생겨서 좋다면서 안내하며 앞장서준 것이다. 산정에 오르니 나무 한 그루 없는 초원이 펼쳐져 있었고 이런 산정에도 왕래하는 사람의 발길이 닿아 폭 30센티 가량의 선명한 적토길이 꼬불꼬불 나 있었다. 한참을 가다가 나더러 꼼짝 말고 제자리에 서라는 것이다. ?선생이 이 높은 山頂에 우뚝 서 있는 모습이 대단합니다. 왼발은 경상북도 땅을, 오른발은 경상남도 땅을 밟고 서있으니 대단하십니다!?하였다.

여기서부터 일단 경북 월성군에 들어 가셨다가 빙 돌아 경남 울산군으로 나와서 조그마한 개천을 건너가면 마을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 마을에 출입하는 길은 오직 하나뿐이데 그래서 사람들은 ?새똥골?이라 부르는 것 같다면서 자상하게 가르쳐주고는 작별을 하였다.

마을에 들어서서 하나뿐인 가게 대청마루방을 빌려 여정을 잠시 푼 다음 마을 어른들을 청하여 소주와 과자를 대접하고 난 뒤 분교인 학교를 찾았는데 교실에서 밖을 내다보니 산에 가려 정말로 하늘이 보이지 않았다. 그 날 밤은 자루바가지 제작하는 집에서 묵기로 했다.

자루바가지를 만들기 위해서 먼저 낮에 입산하여 적당한 소나무를 골라서 표시해 두고 하산한단다. 어두운 밤을 틈타서 다시 입산하여 톱으로 토막을 내어 운반하여 내려오는데 이는 바로 당국 몰래 도벌하는 것이다. 나무의 진을 빼기, 짚불에 그을리기, 3등분해서 자르기, 바가지 홈파고 손잡이 만들기 등의 제작과정을 듣고 이를 이불 속에서 종합하여 잠결에 착상하여 쓴 것이 희곡 새똥골 장승이다.

이 희곡 작품은 한국극작집에 수록되어 있는 것으로 몇몇 극단에 의해서 공연되었으며 어느 지방에서는 아동극으로도 공연되었다는 소문을 들은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