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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남북녀

* 남남북녀 옮긴 하숙집은 다동(茶洞) 또는 다옥동(茶屋洞, 현 청계천)이라 불리는 곳에 있었는데 큰 개천가에 위치하여 네모로 지어진 전통적인 조선 한옥이었다. 주인은 동아일보사 광고부장으로 재직 중인 신(申)씨였다. 식구는 부인, 아들내외. 초등교 4학년 딸 그리고 20대 조카 처녀, 모두가 여섯 식구였다. 신 부장은 넓은 집에 말동무될 젊은 청년을 식구 삶아 방을 내주고 싶다는 말을 부하 직원에게 입버릇처럼 하면서 경상도 청년을 소원하였다는 것인데 결국 내가 영광스럽게도 선정된 것이다. 광고부장 자리는 광고주들이 광고 잘 내 달라는 뜻으로 선물을 많이 한단다, 그래서 선물이 들어 올 때는 사랑채 청마루에 상을 차려 놓고 같이 먹자는 것이다. 어느 날 굴비를 뜯고 맥주를 마셔가면서 남남북녀 설을 늘어놓..

평양여인

* 평양여인 『국민극 연구소』지원자의 한 사람으로 경성에 도착하여 관철동 조그마한 여관에서 묵기로 하였다. 2층 구석방을 내방으로 택했는데 이 여관의 식구는 여주인, 식모 할매, 뽀이 박군 그리고 심부름꾼 소년 현군 모두 네 사람이었다. 무대인이 되고 싶어서 일본 동경에서 조국 서울에 돌아와서 400명의 지원자 가운데서 선발된 38명중의 한 사람이 된 나는 열심히 수강하고 실습에 임하였으며 토․일요일은 물론 공휴일 없이 아침에 나가면 저녁에 숙소에 돌아오는데 극단『현대극장』에서 공연이 있을 때는 밤 11시가 넘어서야 돌아올 수가 있었다. 어느 날 9시경에 돌아와 하루의 피로로 다리를 뻗고 편히 쉬고 있는데 아래쪽 본채에서 남녀간에 싸우는 소리가 크게 들리더니 “박군아! 2층에 가서 아저씨 오시라 해!” ..

고향 방어진 열풍1

건축·도로공사 매축 등 각종 공사와 활기찬 어업으로 경기가 활발한 방어진에 남·북도 전국 각지에서 일꾼들이 모여들었고, 방어진에 가면 개도 10원짜리 돈을 물고 다닌다는 소문을 듣고 거지와 팔도 각설이 패(대개가 나병환자들이었음)들도 모여들었다. 농악걸립패, 유랑극단, 마술단, 곡마단, 동물시바이(芝居: 극장), 유명 영화배우들의 무대인사, 극장 다이쇼깡(大正舘)에 이어 생긴 도끼와깡(常盤舘)은 영화와 연극을 겸한 극장으로 당시에는 그 대단함을 널리 과시할 만 하였다. 일본 스모 요꼬쯔나(천하장사)대회 등 문화행사가 열릴 때마다 울산, 부산 등지에서 떼를 지어 구경꾼들이 모여들었다. 교통수단으로서는 육상으로 울산을 경유하여 부산에 오가는 경남자동차회사의 노리아이지도샤(乘合自動車)와 산양자동차부(山陽自動車..

울산이 기려야 할 문화인물 천재동

증곡 천재동(1915-2007)의 부인 서정자(1924-2020) 여사가 별세한 지 넉 달이 되었다. 지난 6월 13일 97세를 일기로 돌아가시기까지 많은 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1924년에 독립운동가인 서진문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재봉기술 전수학원을 수료하였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지만 조부모와 네 분의 숙부 등이 울타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스물한 살이던 1944년에 서른 살 노총각인 천재동과 결혼했다. 신랑은 당시 모든 조건을 갖춘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 모른다. 신랑인 천재동은 17세(1931)에 방어진 상빈관에서 이라는 극을 올렸는데, 이는 울산 연극의 효시였다. 그 후 1939년에 일본으로 건너가 동경의 가와바다..

천재동 어른 타계

이진두 [문화칼럼] 증곡 어른이 남기고 가신 뜻/ 이진두 언론인2007/07/31 031면 10:34:53 프린터 출력 부산일보 천재동(千在東) 어른이 타계하셨다. 그분이 그립고 떠난 자리가 휑하니 찬바람이 느껴진다. 큰 인물이 세상을 떠나면 남은 사람들은 으레 이런 마음을 갖게 된다. 그런데도 증곡 어른의 타계가 남다른 감회를 갖게 하는 것은 그분이 90 평생 '우리 것'을 찾고 보존하고 전승하는 데 힘써 오셨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증곡 선생은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탈 장인이시다. 동래들놀음이라고도 하는 우리 민속놀이에 쓰이는 탈을 제작하는 기능보유자이시다. 이 놀이에는 양반, 말뚝이, 영노, 할미 등 다양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 인물들이 얼굴에 쓰고 나오는 탈을 증곡 어른이 만드셨다..

김춘수'큰 바가지는~'

▶김성희 기자의 블로그 http://blog.joins.com/jaejae02/ [BOOK 즐겨읽기] 장인 박태순 글· 김대벽 사진 현암사, 376쪽, 1만8000원 [ⓒ 중앙일보 &Joins.com,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큰 바가지는 엉둥이로 웃고/작은 바가지는 배때지로 웃고 있다/千在東의 바가지가 그렇듯이/밝은 날도 흐린 날도/절대로 절대로/울지 않는다” ‘꽃’의 시인 김춘수가 말뚝이 탈을 소재로 쓴 ‘절대로 절대로’의 한 구절이다. 절절한 시어와 함께 이름 석 자를 올린 이는 동래야류-탈 제작 기능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 제 18호였던 고(故) 천재동 옹이다. 천 옹의 이야기는, 소설가이면서 우리 땅과 문화에 관심을 쏟아온 지은이가 1980년대 중반 발품을 팔아 찾아낸 18개의 ‘보석’ 중 ..

광복절 ‘1인 시위’ 나선 독립운동가 후손

울산, 광복절 ‘1인 시위’ 나선 독립운동가 후손 • 정세영 • 승인 2022.08.15 20:11 동구 어울림문화센터 건립 강행서진문 선생 후손 기념행사 불참“독립운동가 묘역도 보호 안해” 울산시 동구가 후손 측의 설계변경 요청에도 서진문 선생의 묘지 경관을 막는 신축건물 건립을 강행키로 해 후손들이 광복절인 15일 공사현장에서 1인 시위에 나섰다. 울산시 동구가 후손 측의 지속적인 설계변경 요청에도 서진문 선생의 묘지 경관을 막는 신축건물을 변경 없이 강행키로 해 후손들이 광복절 날 현장 1인 시위에 나섰다. 동구는 여전히 예산문제와 공기 연장 등을 이유로 설계변경이 어렵다는 입장이다. 15일 찾은 서진문(1900∼1928) 선생의 묘소가 위치한 동구 화정공원. 어울림문화센터 건립을 위한 기초공사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