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의 장인 서진문 37

28세 청년으로 산화한 서진문

UCIG002+AKS-KHF_13C11CC9C4BB38B1901X0생년1901(광무 5)졸년1928시대항일기본관달성(達城)활동분야사회 > 사회주의자[상세내용]서진문(徐鎭文)1901년(광무 5) 8월 28일∼1928년 11월 17일. 일제 강점기 사회주의운동가. 본관은 달성(達城)이고, 본적은 경상남도 울산(蔚山) 동면(東面)이며, 독립운동 당시 주소는 일본 신내천현(神奈川縣) 횡빈시(橫浜市) 중구(中區) 본목기륜(本牧箕輪)이다.부친은 서원준(徐元竣)이고, 모친은 성감동(成甘同)이며, 생부 서장식(徐章寔)과 생모 유남연(柳南蓮) 사이에서 5남 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인은 윤상필(尹相必)이다.울산 병영공립보통학교(兵營公立普通學校)에서 재학하다가 전학 간 동면공립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외사촌(外四寸) 성..

일본에서 만난 두 사람

출처:김원경기자 울산제일일보(2021.03.01) 울산 동구 출신 서진문·성세빈 항일운동가 나라사랑 정신 후손들이 이어가 ‘훈훈’ 이들은 지난 2018년 11월 동구 화정동 서진문 묘역에서 열린 서진문 선생 서거 90주기 추모식에서 자리를 함께 한 이후 2019년 8월 열린 고 서진문 선생 흉상 제막식, 광복절 기념행사 등 항일 독립운동 관련 주요 행사에 자리를 함께하며 선조의 애국정신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서진문이 일본 명치대학 재학 시절인1922년 일본에서 만난 성세빈(왼쪽)과 서진문 서진문(1900~1928)과 성세빈(1893~1938) 선생은 모두 동구 일산동에서 태어난 고종사촌지간으로 같은 마을에서 자라며 서로를 무척 아꼈다. 서진문 선생은 1924년 성세빈 선생이 운영하는 보성학교에서 교..

노동운동의 선구자 서진문과 모 사건

◎. 서진문(徐鎭文)과 『모』 사건 서진문에 대한 신문보도를 요약하면 ◆총독부 제4회 안부조사 도착… 본부사서 관내 현주자… , 서진문(21) 동면 일산리… (동아일보, 1923. 9. 28. 금) ◆본사 특파원 제6회 안부조사 … 서진문 울산 동면 … (동아일보, 1923. 10. 8. 월) ◆일산녀자야학 경남 울산군 동면 일산리에는 본래 여자의 교육기관이 전무하든 바 차를 유감으로 생각하야 동리 서진문씨 외 제씨는 당지 보성강습소 내에 여자야학회를 개설하고 조선어, 산술, 수공 등을 교수하는바 방금 40여 명의 강습생을 수용 중인대 여자교육계에 공헌이 다대하다하야 일반의 칭송이 적적하다더라.(울산) (동아일보, 2. 6. 수) ◆울산 8단체 연합간담회 … 울산 사회단체 간담회는 … 경남 울산군 방어진..

순국선열의 날 추모제(2018.11.17)

추모주를 올리는 외손자 천영베 추모사 서진문 선생님! 선생님의 영전 앞에 지역의 후배들이 모여 추모식을 갖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이 서거하신지 어느새 90년, 조국이 해방된 것도 73년이 지난 지금이 되어 모인 것이 한없이 부끄럽고 죄송스럽습니다, 28세 꽃다운 나이, 민족과 민중의 진정한 해방을 위하여 한 몸을 내던졌던 숭고한 뜻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선생님은 일신의 영달을 멀리하고 늘 낮은 곳에서 동포들과 함께하셨습니다. 일본제국주의의 심장부에서 항일이라는 비수를 품고 조선인노동자들을 이끄는 맹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선생님이 품었던 조국해방의 의로운 뜻은 제국주의의 야욕의 원천이었던 일왕 히로히토가 즉위하기 직전 체포되면서 안타깝게 꺾였지만 90년이 지난 지금도 후대에 존경받을 풍모를 보여주셨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