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울산 최초의 아동극
육군병원은 폐지되고 되찾은 교사(校舍)는 대 수리를 하고
교명(校名)도 태화(太和)로부터 울산(蔚山)으로 개명(改名)하여
『울산국민학교』로 부르게 되었다.
내가 가장 먼저 할 일은 환경 정리였다.
(울산초등학교 재직 중에 그린 페스탈로치)
『페스탈로치(PESTALOZZI, 1746―1827, 스위스의 교육자)』초상을
15호 크기 유화로 그려서 교무실에 걸고,
다음으로는 한국의 위인 초상을 그려서 교내 골마루 곳곳에 걸었다.
천명에 가까운 아동과, 백여 명의 교직원들이
그 동안 오랜 기간을 가교사(假校舍), 향교(鄕校) 등지에서
분산 수업을 하여 온 까닭에 아동은 물론
교직원들까지도 만나면 생소하여 서로들 서먹서먹하였다.
빠른 시간에 학교를 정상화로 일으켜 세우려면
먼저 일체단합, 교풍확립이 선결 문제가 아닐까 해서
전 식구가 화합하는 장을 만드는 방안을 고심한 끝에 모색하였는데,
그것은 뭐니 뭐니 해도 학예회 개최가 상책이라고 생각되어
일대(一大) 연극제(演劇祭)를 개최하여 교풍의 회복,
사제간의 단합, 학부모로부터의 신뢰
그리고 군민들에게 학교의 건전함을
실력으로 바로 보여 줄 수 있다고 학교장에게 건의하게 되었다.
학교장은 쾌히 승낙 했으나 교감 외 일부 교사 간에서는
‘지가 뭐 안다고!?’ 하면서 반대 의사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학교장의 단호한 의지는 나를 믿고 밀어 주었던 것이다.
윤진일 교장은 과거 부산 시내 국민학교 5대 교장 중의 한 사람 이였다.
이제는 나이가 들어서 마지막 퇴임은
고향 울산에서 맞이할 생각으로
고향에 자신의 모교인 울산국민학교에 부임 해 온 것이다.
서둘러 연극제 준비에 들어갔다.
우리 아동들에 알맞은 소재를 여러 방향으로 생각하던 중
1학년에서 6학년까지의 국어 교과의 내용을 분석해 보니
「병원 놀이」란 단원을 선택하고
이「병원 놀이」를 골격으로 하여 여기에 관련성이 있는
과목과 단원들에서 내용을 추려내고 삽입하고
참고하는 등 총망라하여 묶어서 각색했다.
교사들 중에는 나도 한 막(幕) 하겠다면서 나서는 동료 교사도 있는가 하면
마땅치 않다고 노골적으로 백안시(白眼視)하는 교사도 없지는 않았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나는 각색, 연출, 소품, 장치 등 나의 능력을 총동원하여
공연에 차질 없이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드디어 학교에 마련된 넓은 강당을 마다하고
울산극장을 공연장소로 택하여
울산 최초의 아동극 「병원 놀이」가 화려하게 막을 올렸다.
그리고 큰 호평과 함께 많은 찬사를 받으면서 성공적으로 막을 내렸다.
‘우리 각시 다리 다쳐 걱정이 된다.
실로 꿰매 줄까 풀 붙여 줄까’ ……. 로 시작하여
‘전화를 겁니다. 딸딸딸…
여보세요. 거기가 병원입니까?
김영길 병원요 딸딸딸’
이렇게 노래를 불러 가며 오페레타(operetta) 형식으로 연출한 것이다.
교내에서는 ‘전화를 겁니다. 딸딸딸’ 노래가 제법 유행되었고,
한길에서 나를 발견한 뭇 남녀 중 ? 고등학생들 까지도
‘전화가 왔습니다. 딸딸딸’ 노래하며
“선생님!” 부르면서 잘 아는 척 반가이 대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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