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창호(申昌鎬) 화백(畵伯)과 물회
신창호은 나와는 뜻이 잘 통했다.
정의한(正義漢)으로 부정이라면 끝까지 싸우는 성품을 지니고 있는데
누구든 한번 믿었다면 신임을 함부로 저버리지 않고 이어갔다.
내가 아는 바로는
많은 제자를 가르치면서 부당한 금품을 바라는 법도 없었다.
우리는 대신동(大新洞) 한 건물 속에 각각 연구실을 운영하면서
건물 내(內) 또 다른 화실에서
심심풀이 도박한 판돈으로 음주(飮酒)를 하게 되면
더러운 주석(酒席)이라 하여 한번도 어울린 적이 없었고,
오히려 “선생님 우리 깨끗한 돈으로 한잔 하러 갑시다.” 하는 것이었다.
어느 날 “선생님 갑시다. 좋은 집을 발견했습니다.”해서
따라 간 곳이 동대신동(東大新洞) 어느 길머리
조그마한 ‘물회’ 집이었다.
먼저 온 손님은 없었고
50대로 보이는 주인 남자는 우리를 기쁘게 반겨주었다.
물회라면 싱싱한 광어, 오징어, 한치 등 생선회를
양념한 물에 말아먹는 색다른 회(膾) 요리 음식이다.
영도(影島)에 가면 많은 물회 요리 집이 있는데
친구들과 어울려 찾아 갈 때면
맛이 좋아서 먹으로 가는 것이 아니라
한 번쯤 색다르게 회 맛을 본다는 기분으로 가서 그런지
별 맛을 느끼지는 못하였지만
오늘 이 물회는 시원하면서도 입 안에서
오돌 오돌 씹히면서 감치는 그 맛에 정말 놀라고 말았다.
포항(浦項)이 고향인 주인 말에 의하면
회 물이 육수(肉水)라 했다.
내가 듣고 아는 바로는 물회의 원조는 함경도(咸鏡道)인데
언제부터 포항에 흘러 들어왔는지는 모르겠으나
지금껏 포항지방의 별미음식 중의 하나로 소문 나 있다.
육수(肉水)로 만든 이 육수회(肉水膾) 집이
얼마 후 문을 닫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손님 수가 적어서 육수 값도 안 된다는 것이다.
맹물로 만들면 되지 않겠느냐고 하였더니
양심이 허락지 않는다면서 서글프게 웃었다.
그리고는 “부산 사람은 물회를 몰라요.”하였지만
나는 물회 맛을 알았기 때문에
그 후로 물회를 먹지 않기로 하였다.
(앞줄 우에서 좌로 세번째 신창호 화백)
(왼쪽이 신창호 화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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