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 전체보기 802

천재동의 대학촌

국제신문 1997년 8월 28일 목요일 가난한 예술가들의 사랑방 역할 추/억/의 그 곳 ⑰ 주막 「대학촌」 〔천 〔재 〔동 나에게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단어 하나를 선택하라고 하면 주저없이 「추억 」을 말하겠다. 세상에 나온 지 여든 해가 넘었지만 동지들 즉 예술활동가들과의 우정이 가장 기억에 남으며 살아가는 보람을 느끼게 한다. 가족들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어찌보면 남자들 세계에 있는 우정이랄 수도 있다. 나는 한 평생을 연극과 그림, 탈조각예술 등을 하면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교류를 하고 있지만 60, 70년대 광복동 입구에 있던 「대학촌」시절을 잊을 수 없다. 당시 부산에서 대학촌을 모르면 간첩이라 할 정도로 유명했는데 오히려 서울 마산 등 타 지방 사람들에게 더 알려진 사교의 장이었다...

울산이 기려야 할 문화인물 천재동

울산이 기려야 할 문화인물 천재동 • 울산제일일보 승인 2020.11.04 23:05 댓글 0 • 기사공유하기 프린트 메일보내기글씨키우기 증곡 천재동(1915-2007)의 부인 서정자(1924-2020) 여사가 별세한 지 넉 달이 되었다. 지난 6월 13일 97세를 일기로 돌아가시기까지 많은 곡절을 겪었을 것이다. 1924년에 독립운동가인 서진문의 딸로 태어나 다섯 살에 아버지를 여의었다. 이후 일본에 유학하여 재봉기술 전수학원을 수료하였다. 어머니와 단둘이 살았지만 조부모와 네 분의 숙부 등이 울타리가 되어주었을 것이다. 스물한 살이던 1944년에 서른 살 노총각인 천재동과 결혼했다. 신랑은 당시 모든 조건을 갖춘 최고의 신랑감이었다. 두 사람의 결혼은 어쩌면 운명적이었는지 모른다. 신랑인 천재동은 1..

부산 원도심 문화사랑방 이야기[8]

‘재동 재동 천재동(天才童)’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9. 9. 4. 부산 원도심 문화사랑방 이야기[8] 최화수 2017. 2. 14. 11:44 웃고 울며 사랑하노라니… - 부산 원도심 문화사랑방 뒷이야기(8) 최 화 수 ‘재동 재동 천재동(天才童)’에 물찬 ‘제비’ 196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부산 원도심에서 열린 각종 문화행사의 현장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아마도 증곡 천재동曾谷 千在東이 아닌가 한다. 중요무형문화재(동래야류)인 그는 자신의 회고록 『아흔 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 제명이 시사하듯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다양한 예술인의 삶을 구가했다. 증곡은 토우土偶, 동요민속화, 연극, 가면탈, 민속놀이 등 우리 전통민속예술에 일가를 이루었다. 2007년 그는 회고록 『아흔..

일본에서 만난 두 사람

출처:김원경기자 울산제일일보(2021.03.01) 울산 동구 출신 서진문·성세빈 항일운동가 나라사랑 정신 후손들이 이어가 ‘훈훈’ 이들은 지난 2018년 11월 동구 화정동 서진문 묘역에서 열린 서진문 선생 서거 90주기 추모식에서 자리를 함께 한 이후 2019년 8월 열린 고 서진문 선생 흉상 제막식, 광복절 기념행사 등 항일 독립운동 관련 주요 행사에 자리를 함께하며 선조의 애국정신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있다. 서진문이 일본 명치대학 재학 시절인1922년 일본에서 만난 성세빈(왼쪽)과 서진문 서진문(1900~1928)과 성세빈(1893~1938) 선생은 모두 동구 일산동에서 태어난 고종사촌지간으로 같은 마을에서 자라며 서로를 무척 아꼈다. 서진문 선생은 1924년 성세빈 선생이 운영하는 보성학교에서 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