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줄 우에서 세번째 김종식 화백.네번째 부산문화복덕방 김상수 어른.두 분 사이에 필자 천재동>
* 김종식(金鍾植) 화백(畵伯)의 정(情)
화백 김종식은 많은 친구와 제자를 가진 호감이 가는 멋진 인사다.
남을 해롭게 하거나 함부로 화를 내거나 하지 않고 과묵한 성품의 소유자이다.
시간의 틈만 있으면 호주머니에서 스케치북을 꺼내어 주변은 아랑곳하지 않고 묵묵히 작품 구상에 빠진다.
막걸리 외에는 잘 마시지 않고 여러 사람과 같이 한 자리에서도 말없이 마시기만 한다.
자기 혼자 주점에 가서 마시는 것이 아니라 대체로 제자들이 다투어 술대접을 하는 것이다,
소문에 의하면 김화백이 야외 사생 시에 그의 작품이 본인은 알게 모르게 남의 손에 넘어간다는 것과
계획적으로 야외 사생지(寫生地)까지 원정 와서 술대접으로 작품을 챙긴다는 것이다.
또 그렇게 없어진 작품은 하나같이 작가의 서명(書名)이 없기 때문에
언젠가는 동광동(東光洞)에 있는 집에 서명을 받기 위해 방문을 하는데
그의 부인이 반가와 할 리가 만무하다,
그렇게 방문한 객들이 들고 오는 것이 대개가 양주(洋酒)이기 때문이다.
부인의 입장에서는 돈 될 만한 작품이 제대로 관리가 되어
가정 경제에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당연한 바람이요,
남편의 건강을 걱정한 나머지 술을 가지고 와서
작품 값으로 대신하려는 방문객이 고와 보이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김 화백이 나에게 한 말 가운데
“내 싸인이 없는 작품은 내 그림이 아니다!”라고
여러 번 이야기 한 적이 있다.
웬만큼 마셔도 실수하는 일이 없는데,
언젠가 정도 이상으로 마셔 넘어지기도 하여 병원신세까지 지기도 하였다.
한번은 취해서 길바닥에 쓰러져 있었는데 불한당이 취객의 호주머니를 노렸다.
김화백은 돈과 손목시계 모두를 순순히 털어 내주면서
부디 구타만은 하지 말라고 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김 화백의 아들이 장가가는 날 하객의 한사람으로 결혼식장에 들려
상객(上客)과 인사를 주고받는 자리에서 부인이 나를 보더니 외면하는 것이 아닌가,
그럴 사이가 아닌데 왜 저럴까 하고 곰곰이 생각한 끝에 그 원인을 알만 하였다.
얼마 후 어느 날 만난 자리에서
“야 김화백! 너 마누라에게 나를 몇 번 팔아먹었나?”하였더니
즉시 하는 대답이
“몰라 한 대―엣 번이 될까!?”하였다.
매일 술 취해서 밤중에 들어오니 부인으로서 화가 날 수밖에
“오늘 또 누구하고 마셨소?”
“천재동하고 마셨소.”
한 두 번이 아니고 날마다 천재동 천재동 했으니,
천재동 때문에 우리 영감 다 망치게 되었으니 나를 옳게 볼 이유가 없다.
“야 이 친구야 어제 밤에 또 술 마셨나? 내하고 참말로 한번 마셔볼까? 벌주로 자네 한잔 사게!”해서
당시 개점한지 얼마 안 된 주점 ‘모래톱’에서
김 화백 근래 와서 최고의 술값 일금 5000원을 벌주 값으로 낸 적이 있었다.
고교 교사인 화가 김인근(金仁根)은 고교 학창 시절에
김 화백으로부터 직접 배운 많은 제자 중에 한 사람이다.
어느 날 김 교수가 나에게
“김인근이가 말이다, 나만 보면 선생님 ‘나무오바’ 언제 입습니까? 하는데
기분 나쁘다 말이다. 그런 말을 하지 않도록 자네가 말 좀 해주게”하면서
간곡히 부탁하는 것이다.
“나무오바가 뭐꼬?”물으니
“날더러 언제 죽느냐라는 악담아이가”
“나무오바하고 무슨 관계가 있노?”
“관을 ‘나무오바’라 안커나“
듣고 보니 그럴 뜻한 이야기였다.
김 교수가 어느 초상날 산소에서 내려오다가
묘 옆에 파 헤쳐 놓은 구덩이 속으로 굴러 떨어지고 말았다.
인근이란 제자가 내려다보면서 하는 말이
“선생님 ‘나무오바’도 입지 않은 채로 벌써 들어가시면 어쩌실 겁니까?”하더란다.
훗날 김인근 교사를 만난 자리에서 김교수에게 가혹한 말을 하지 마라.
대단히 섭섭하게 생각하더라고 일렀더니,
“나는 나쁜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고
덕성스런 선생님께 장난말로 더욱 친근해 지려고 했을 뿐인데
그렇게 충격의 말이 되었다면 그런 말을 해서는 안 되죠”
앞으로 조심하겠다고 하였다.
이어서
“굴러 떨어져 구덩이에 빠졌을 때 ‘나무오바’ 말을 했어요.
선생님은 넘어져 있으면서도 빙그레 웃었고
거기에 있었던 사람 모두가 웃고 즐겼는데,
나는 별 다른 생각도 하지를 않았는데……”라며
웃으면서 하는 김인근의 말에 나도 웃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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