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신동 작업장을 방문한 重光 1988. 6. 17)
* 걸레 중(僧) 중광(重光)
서대신동에 연구실을 가지고 있을 때
어느 날 스님 중광이 불쑥 나타난 것이다.
선생을 텔레비전에서 뵙고 직접 만나보고 싶어 하던 중
오늘에서야 찾아왔다고 하면서 첫인상이 좋다는 등
흡족해하는 표정을 읽을 수 있었다.
허술한 듯한 흑색黑色옷은
양복인지 한복인지를 구별하기 어려웠고,
차림에서 특별한 냄새가 나는 듯 하였는데,
머리에 쓴 모자에는
황색의 무슨 배지 같은 것이 꽂혀있었다.
무슨 배지냐? 는 질문에
“나도 몰라, 길에서 주웠는데
내버려두는 것 보다 좋찮으냐?”면서 빙긋 웃었다.
우리들 일상의 악습과 잘못된 관행에 대하여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비판과 한탄을 섞어서
높은 목소리로 주장하는 것을 듣자하니
소문대로 주관이 뚜렷한 기인은 틀림없어 보였다.
품속에서 노끈으로 묶은 한 뭉치의 종이를 꺼내 보이면서
길에서 얻은 것이라 하고는 도로 품속에 넣어 간직하는 것이었다.
그 후로 몇 차례 온 후로 뜸하다가,
어느 해 여름날 부산에 거주한다는
대학생 같은 제자 남녀 네 사람과
노(老) 부인을 모시고 연구실에 나타났다.
노 부인께서 선생을 꼭 뵙고 싶다 해서
오늘 모시고 왔는데 양모(養母)라고 소개하였다.
젊은 제자들은 중광스님 못지않게 명랑하고 활기가 넘쳐흘렀다.
오늘 선생님을 모시려고
사전에 사람을 통해 알아보니
생선회를 좋아한다는 것을 알고
다대포(多大浦) 횟집에 예약도 해놓았으니
할머니와 함께 준비해온 차를 타고 가자고 하였다.
회를 안주하여 담소(談笑)하는 가운데
중광스님이,
“선생의 작품인 말뚝이 탈 한 점 팔려면
얼마의 값을 받습니까?”라고 물었다.
갑작스런 질문에 황당하다는 생각이 들면서,
사려는 사람은 없거니와
만약 사려는 사람이 있다면 한 이백만원 될까요?… 했더니,
“뭐! 이백만원貳百万圓이라고요?!
인간문화재人間文化財 작품이 단돈 200만원이라 …”하고는
한참 내 얼굴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선생 내가 그린 동자(童子)그림 한 점 값이 얼마인 줄을 아느냐? ”고 말하기에,
“얼마냐?” 고 반문하였더니
서슴지 않고 800만원이라 하였다.
묵으로 선묘(線描)하여
입술을 앵두같이 빨갛게 채색한
4절 크기의 동자 반신상인데
이 그림이 800만원이다.
중광은 양모와 제자들 앞에서
체면도 예의도 없이 거침없이
“선생! 나는 실망했습니다.
문화재의 작품보다 거지중의 작품이
4배나 값이 많이 가니 내 어이 선생을 가까이 하겠소?”라며
냉소(冷笑)하는 것이다.
걸레스님의 독특한 기질이라 생각되면서,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소문들이
거짓이 아님을 그제야 확신하게 되었다.
작품 값이 그렇게 차이가 날 정도로 싸다면
천재동의 예술적 가치도 별것 아니니
당연히 상대할 바가 없다고 단정해서인지
그 후로 중광스님이 지금껏 나를 찾아오거나 만난 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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