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곡에 대한 글,기타 39

어데 어데 보이노?

증곡의 토우 ㅡ 반도파이낸스의 반도소식지 표지(1999년 2월호 통권11호) 어데 어데 보이노 동구 밖이 보인다. 어데 어데 보이노 남대문이 보인다. 어데 어데 보이노 백두산이 보인다. 어데 어데 보이노 금강산이 보인다. 어데 어데 보이노 한라산이 보인다. 어데 까지 보이노 코쟁이 나라 보인다. 어데 까지 보이노 달나라가 보인다. 어데 까지 보이노 별나라가 보인다.

증곡이 어린 날의 설

1996년 신년호 거침없던 내 어린 시절의 설날 연 날리기 날이 밝아 설날이 되면 열살 안팎되는 내 또래 동무들은 때를지어 연세 높으신 어르신댁부터 차례로 "세배돌기"를 했다. 솜을 넣어 지은 핫바지에 두루마기를 걸치고서 새로 산 반고무신을 신고 나설때면, 새뱃돈을 챙겨둘 심산으로 허리띠에 주머니를 하나씩 찻다. 설에 할 수 있는 놀이가 바로 연 날리기였다. 구불연(방패연)을 만들어 놓고 사구(사기) 먹인 당사실을 자세(얼레)에 잘 감아 두었다가 밖에 나가 날리기만 하면 되었다. 연은 하늘 높이 치솟다가 탱금을 받으면 땅을 향해 거꾸로 내리 꽂히기도 하고 오른쪽, 왼쪽으로 후리치기 하다가 개똥 먹기도 했다. 벌써 칠십 년이란 세월이 흘러 가뭇한 옛날 일이 되어버렸지만, 태극을 하얀 이마에 붙이고 재주하던..

부산 원도심 문화사랑방 이야기[8]

‘재동 재동 천재동(天才童)’ 댓글 0 카테고리 없음 2019. 9. 4. 부산 원도심 문화사랑방 이야기[8] 최화수 2017. 2. 14. 11:44 웃고 울며 사랑하노라니… - 부산 원도심 문화사랑방 뒷이야기(8) 최 화 수 ‘재동 재동 천재동(天才童)’에 물찬 ‘제비’ 1960년대부터 반세기 동안 부산 원도심에서 열린 각종 문화행사의 현장사진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인물은 아마도 증곡 천재동曾谷 千在東이 아닌가 한다. 중요무형문화재(동래야류)인 그는 자신의 회고록 『아흔 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 제명이 시사하듯 그 누구보다 건강하고 다양한 예술인의 삶을 구가했다. 증곡은 토우土偶, 동요민속화, 연극, 가면탈, 민속놀이 등 우리 전통민속예술에 일가를 이루었다. 2007년 그는 회고록 『아흔..

오늘의 한국(KOREA TODAY 1998년 9월)

표지의 말 우리 민족이 남겨준 전통 탈은 억압된 계급사회에서 숨죽여 살아온 서민들의 이야기가 담겨져있고, 그것은 그들의 울분을 분출해내는 대변자 였다, 그래 탈을 뒤집어 쓰고 한 마당 질펀하게 소리치며 놀 때만은 계급도 떠날 수 있었다. 바가지 위에 민중의 애환을 새겨온 중요무형문화재제18호 동래야류 탈장 천재동옹은 동래야류 탈과 탈놀이를 원형 그대로 재현하기위해 지난 45년 동안 그의 인생을 바쳐왔다, 는 KAL 국제선의 기내도서로 비치되어 많응 사람으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의 한국(1998년 9월) 증곡이 동래말뚝이 코 부분을 손질하고 있다. 풍자와 해학으로 서민의 애환 그려...... - 손주들과 함께 한 천옹. 손주들이 비록 어리지만 할아버지가 탈장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다. - - 천옹..

채낙현(동래구청장)

『4번째 千在東 부산시민 위안 민속 잔치』 채낙현(동래구청장) 千在東, 한마디로 웃기는 사람이다. 천성적이라 할 그의 익살과 해학은 일상의 생활에서도 살아 있다. 우리는 그의 탈에서 또는 테라코타에서 보이는 특출한 조형성은 예술의 극치를 이루고 있다는 것은 이미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그의 일생에 또 하나의 획을 이루는 연극에 대해서는 그렇게 주목하지 않았다. 그가 일제시 국민연극 연구소 출신이며 이어 東京東寶系 극장 有樂座에서 연극을 계속한 사실도 크게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여기서는 그가 연극과 관련된 내력을 소개해 보기로 한다. 1964년 아동극단「갈매기」창단 「파랑새의 꿈」을 발표 아동극단「바다」창단 「까치의 죽음」을 발표 1967년 전국 아동극 경연대회 출전「두마리의 당나귀」 문공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