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어린 날의 기억들 8. 어린 날의 기억들 방어진은 동, 서, 남, 북, 중앙 5구(區)로 구분하여 동쪽은 김씨가 촌장으로 김동촌(金東村)이라 불렀고, 서쪽은 황씨가 동장으로 황서동(黃西洞)이라 부르고, 남동네, 북동네 그리고 중앙은『천중리(千中里)』라 하였는데, 우리 아버지가 천중리네로 다섯동을 모두 통솔하는 책임을..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2.05
7. 방어진의 항내(港內) 어로(漁撈) 방어진의 항내(港內) 어로(漁撈) 방어진 항내에서 잡아들이는 어류(魚類)인 학꽁치와 멸치에 대한 이야기를 빼 놓을 수가 없다. 꽁치 떼가 항만에 들어오면 두 척의 배를 저어 그물을 치고, 돌을 던지고, 장대로 해면(海面)을 치면서 어로(漁撈)하는 광경은 방어진 항만 아니면 볼 수 없는 풍경이 아닐까..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9
6. 고등어 잡이 건착선(巾着船) ◎고등어 잡이 건착선(巾着船) 방어(?魚)에 못지않게 앞 바다 일대에서 많이 잡히는 것이 고등어이다. 동양의 수산왕으로 알려진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가 16세의 어린 나이에 선원이 되어 배를 타고 입항하여 방어진에 첫발을 내 디딘 것이다. 훗날 성공하여 ‘하야시까네(林兼)’란 상호(..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6
5. 방어진과 방어 ◎방어진과 방어 내가 알고있는 방어진(方魚津)이란 지명은 과거 지도상에 이름도 없었던 곳이 어항(漁港)으로 개척되자 지명(地名)을 필요로 한 나머지 1907~8년경 행정상 경상남도 울산군 동면 방어진(慶尙南道 蔚山郡 東面 方魚津)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방어진이란 명칭을 두..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6
4. 동양의 수산왕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 동양의 수산왕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 방어진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 하야시가네(林兼) 수산어업회사를 설립한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는 16세의 나이에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무일푼으로 건착선원(巾着船員)이 되어 방어진에 첫발을 디디게 된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세계적인 ..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2
3. 고향 방어진 풍경 Ⅱ ◎ 방파제 공사 내가 여덟 살 되던 해인 1923년에 주민들의 휴양소이던 볕바우산(白陽山)을 뭉개어 백사장을 매축하는 동시에 백양산 꼬리에서 동편 시리섬(일인들은 나마고시마: 해삼섬)을 향하여 레일을 깔아놓고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덩어리를 심해에 굴러 넣어 조성하기시작한 공사가 무려 6년이..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1
2. 고향 방어진 풍경Ⅰ 고향 풍경1 동해 남부의 미항 방어진은 본래 해안에 접한 낭떠러지인데다 칡넝쿨 등 이름모를 잡목들로 우거져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옛날 왜구들이 침범했을 때는 이곳 낭떠러지 아래 숲속은 ‘지리’ 주민들의 유일한 피난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린 날 항구 중..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19
1. 고향 방어진 ◎ 고향 방어진(方魚津) 동해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내려오면 신라 제30대 문무대왕(文武大王)의 수중릉이 있는 감포(甘浦)를 지나서 경상남북도 경계를 넘어서 조금 더 내려오면 얼마 가지 않아 울기 등대산(蔚崎 燈臺山)을 쉽게 만나볼 수가 있다. 등대산은 등대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가 백년이 훨씬 ..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19
회고록 들어가기 # 천재동 '아흔 고개를 넘으니…' -92살 원로 식을 줄 모르는 예술혼 천재동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보유자(인간문화재) 천재동(92) 씨가 '증곡 천재동 회고록'을 펴냈다. 회고록의 제목은 젊은 세대를 긴장시킨다. '아흔 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동아정판) 그가 부산의 문화현장 어..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