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 민속예술에 몸을 담고 ◎ 辛佑彦 翁의 귀중한 證言 1965年 10月 “ 동래야류”란 이름의 假面舞劇이 全國民俗藝術競演大會에 出戰하여 大統領賞을 수상하여 歸省報告를 겸한 祝賀公演을 釜山日報 프레스홀(4층)에서 개최했고 나는 창작가면작품전을 부산시 공보관 전시장에서 개전하고 있었다. 나는 이 ..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8.01
장인 천재동 [BOOK 즐겨읽기] ‘말뚝이 탈’ 뚝심 닮은 장인 18인을 만나다 [중앙일보2009. 5.30] 논쟁중인 댓글 (0) 일제시대 맥이 끊긴 민속가면극 ‘동래야류’의 복원에 힘쓰다 종내에는 말뚝이 탈의 제작까지 손대 중요 무형문화재로 선정됐던 고(故) 천재동 옹의 생전 작업 모습. [현암사 제공] 관련핫.. 증곡에 대한 글,기타 2009.05.30
79. 울산방어진 축구이야기 조국 광복 전 당시 축구공은 3호, 4호, 5호, 6호등으로 크고 작은 공들이 있었다. 시합 때는 4호로 정하고 가격은 2원이었다. 축구란 운동은 눈이오나, 비가 오나, 추우나, 더우나 사시사철 어디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공 한개만 있으면 운동할 수 있는 것으로 성황을 이루었다. 면 대..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5.26
78. 방어진 남조선 야구대회 우승 『남조선제2회야구대회우승』기념사진(1946년 9월 20일) 방어진팀 우승 기념촬영(됫줄 왼쪽 첫번째 형님 천일동 , 뒷줄 오른쪽 3번째 ‘방’자없는 천재동)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5.19
77. 이상한 개관식 부산시(釜山市) 서구(西區) 에 여성회관(女性會館)이 세워졌다. 개관 기념식 초대를 받아 강당에 들어가니 저쪽 뒷자리에 외로이 홀로 앉아 있는 금당(錦堂)선생을 발견하고 “선생님 왜 여기 계십니까?”하고 인사 겸(兼)한 뒤 모시고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잠시 후 여직원이 오더..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5.14
76. 예술과 낭만의 고장 목포 서남 해안의 중심이며 멋과 낭만의 도시인 목포시가 개항 80주년을 맞이하여 축제 행사를 거시적으로 펼치는데 부산 영도에 있는 ‘삼양제망공장’의 본사가 목포에 있는 관계로 이 축제행사에 가장행렬 종목으로 참여하기로 하고 나를 초빙하여 모든 책임 하에 지도해 달라는 것..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5.14
75. ‘대선소주’ CF모델이 되다 ‘대선주조회사’에서 선전 영화에 출연 요청이 온 것이다. 당시 나는 『부산 시립 민속 예술관 』관장 직에 재직 중이라 주저주저하다가 출연을 승낙하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예술관 무대에 세트가 설치되고 사방에서는 조명이 비치고 카메라가 여러 대 동원되더니 촬영이 시..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4
74. 밀양 병신 굿 놀이 『밀양백중놀이(중요무형문화재제68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밀양병신굿놀이』연희본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밀양별오고무(密陽別五鼓舞)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부터 관계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터라 그들의 부탁을 받아들여 밀양을 방..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3
73. 광대 이동안(李東安)선생 이동안(李東安, 제79호발탈보유자) 선생은 어릴 때부터 광대인 아버지가 방방곡곡을 순회하면서 공연하는 가운데, 따라 다니면서 다방면의 우리 전통 연희를 보고 익혀왔다. 고유무용, 음악, 놀이 등에 능숙하여 명인으로 불리면서도 무슨 사유인지 부산까지 흘러와 광안리에서 ..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3
72. 일봉(逸峰) 조성국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기예능보유자들이 명예를 스스로 지키자는 것은 물론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맞설 수 있는 단합회를 만들고자 1970년대에 가칭 『중요무형인간문화재총연합회』란 간판을 내 걸고 당시 중요무형문화재제19호 ‘선소리 山打令’ 예능보유자 이창배를 회장으로 선출..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