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8. 방어진 남조선 야구대회 우승 『남조선제2회야구대회우승』기념사진(1946년 9월 20일) 방어진팀 우승 기념촬영(됫줄 왼쪽 첫번째 형님 천일동 , 뒷줄 오른쪽 3번째 ‘방’자없는 천재동)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5.19
77. 이상한 개관식 부산시(釜山市) 서구(西區) 에 여성회관(女性會館)이 세워졌다. 개관 기념식 초대를 받아 강당에 들어가니 저쪽 뒷자리에 외로이 홀로 앉아 있는 금당(錦堂)선생을 발견하고 “선생님 왜 여기 계십니까?”하고 인사 겸(兼)한 뒤 모시고 앞자리에 가서 앉았다. 잠시 후 여직원이 오더..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5.14
76. 예술과 낭만의 고장 목포 서남 해안의 중심이며 멋과 낭만의 도시인 목포시가 개항 80주년을 맞이하여 축제 행사를 거시적으로 펼치는데 부산 영도에 있는 ‘삼양제망공장’의 본사가 목포에 있는 관계로 이 축제행사에 가장행렬 종목으로 참여하기로 하고 나를 초빙하여 모든 책임 하에 지도해 달라는 것..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5.14
75. ‘대선소주’ CF모델이 되다 ‘대선주조회사’에서 선전 영화에 출연 요청이 온 것이다. 당시 나는 『부산 시립 민속 예술관 』관장 직에 재직 중이라 주저주저하다가 출연을 승낙하였는데 눈 깜짝할 사이에 예술관 무대에 세트가 설치되고 사방에서는 조명이 비치고 카메라가 여러 대 동원되더니 촬영이 시..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4
74. 밀양 병신 굿 놀이 『밀양백중놀이(중요무형문화재제68호)』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밀양병신굿놀이』연희본을 작성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내가 밀양별오고무(密陽別五鼓舞)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전부터 관계자들과 친분을 유지하고 있었던터라 그들의 부탁을 받아들여 밀양을 방..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3
73. 광대 이동안(李東安)선생 이동안(李東安, 제79호발탈보유자) 선생은 어릴 때부터 광대인 아버지가 방방곡곡을 순회하면서 공연하는 가운데, 따라 다니면서 다방면의 우리 전통 연희를 보고 익혀왔다. 고유무용, 음악, 놀이 등에 능숙하여 명인으로 불리면서도 무슨 사유인지 부산까지 흘러와 광안리에서 ..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3
72. 일봉(逸峰) 조성국과 함께 중요무형문화재기예능보유자들이 명예를 스스로 지키자는 것은 물론 당국의 부당한 처사에 맞설 수 있는 단합회를 만들고자 1970년대에 가칭 『중요무형인간문화재총연합회』란 간판을 내 걸고 당시 중요무형문화재제19호 ‘선소리 山打令’ 예능보유자 이창배를 회장으로 선출..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21
71. 윤제(潤齊) 이규옥(李奎玉)과 백촌장 * 윤제(潤齊) 이규옥(李奎玉)과 백촌장 광복동 입구에서 채 100보도 못 가서 좌측 골목에 들어서면 왼편 두 번째 가게에, 갓과 곰방대 그림이 그려져 있고 「갓집」이라 씌어져 있는 간판이 걸려져 있다. 이 갓집 주인은 미녀(美女)로 알려진 허(許)마담이 경영하는 통술집이다. 「갓..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01
70. 화가 임호와 백촌장 * 화가 임호와 백촌장 광복동(光復洞) 입구에 부산의 문화인 총집결소(總集結所)로 만들어 봉사하겠다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주점, ‘대학촌’은 주인의 성(姓)이 백씨(白氏)이였는데 우리는 그를 백촌장(白村長)이라 불렀다. 백촌장은 드물게 있는 남근(男根) 수석(壽石)을 귀중하..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4.01
69. 묵해(黙海) 김용옥(金容玉) (문화인 행사에서 염 교수와의 만남) (가운데 묵해 선생) * 묵해(默海) 김용옥(金容玉) 서예가 묵해 선생은 생존시에 공석때나 사석때나 어디서나 동갑이란 이유로 나와는 아주 가까이에서 지낸 만큼 정다운 사이였다. 1915년생은 토끼띠이기 때문에 자식이 많다면서 싱긋 웃곤 하였..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9.03.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