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방어진과 방어 ◎방어진과 방어 내가 알고있는 방어진(方魚津)이란 지명은 과거 지도상에 이름도 없었던 곳이 어항(漁港)으로 개척되자 지명(地名)을 필요로 한 나머지 1907~8년경 행정상 경상남도 울산군 동면 방어진(慶尙南道 蔚山郡 東面 方魚津)으로 등재된 것으로 알고 있다. 일부 사람들이 방어진이란 명칭을 두..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6
4. 동양의 수산왕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 동양의 수산왕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 방어진 지역 경제에 크게 이바지한 하야시가네(林兼) 수산어업회사를 설립한 나까베 이꾸지료(中部幾次郞)는 16세의 나이에 시모노세키(下關)에서 무일푼으로 건착선원(巾着船員)이 되어 방어진에 첫발을 디디게 된다. 자수성가(自手成家)하여 세계적인 ..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2
3. 고향 방어진 풍경 Ⅱ ◎ 방파제 공사 내가 여덟 살 되던 해인 1923년에 주민들의 휴양소이던 볕바우산(白陽山)을 뭉개어 백사장을 매축하는 동시에 백양산 꼬리에서 동편 시리섬(일인들은 나마고시마: 해삼섬)을 향하여 레일을 깔아놓고 거대한 철근콘크리트 덩어리를 심해에 굴러 넣어 조성하기시작한 공사가 무려 6년이..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21
2. 고향 방어진 풍경Ⅰ 고향 풍경1 동해 남부의 미항 방어진은 본래 해안에 접한 낭떠러지인데다 칡넝쿨 등 이름모를 잡목들로 우거져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을 수 없었던 곳이었다. 옛날 왜구들이 침범했을 때는 이곳 낭떠러지 아래 숲속은 ‘지리’ 주민들의 유일한 피난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어린 날 항구 중..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19
1. 고향 방어진 ◎ 고향 방어진(方魚津) 동해 해안선을 따라 남으로 내려오면 신라 제30대 문무대왕(文武大王)의 수중릉이 있는 감포(甘浦)를 지나서 경상남북도 경계를 넘어서 조금 더 내려오면 얼마 가지 않아 울기 등대산(蔚崎 燈臺山)을 쉽게 만나볼 수가 있다. 등대산은 등대를 중심으로 주변 일대가 백년이 훨씬 ..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19
회고록 들어가기 # 천재동 '아흔 고개를 넘으니…' -92살 원로 식을 줄 모르는 예술혼 천재동 중요무형문화재 제18호 동래야류 보유자(인간문화재) 천재동(92) 씨가 '증곡 천재동 회고록'을 펴냈다. 회고록의 제목은 젊은 세대를 긴장시킨다. '아흔 고개를 넘으니 할 일이 더욱 많구나!'(동아정판) 그가 부산의 문화현장 어.. 천재동 회고록 연재(連載) 2007.11.17
탈(가면) ♣천재동의 탈 복탈 1 복탈 2 복탈 3 복탈 4 장(壯) 엽(葉) 부(富) 귀(貴) 현(賢) 화(花) 정(情) 수(壽) 복탈 5 가(嘉) 인(忍) 달마(達磨) 유(柔) 관(寬) 경남도립미술관 소장(1971년 작) 천재동의 탈 2007.11.15
토우(土偶) ♣천재동의 토우(土偶) 추위노래 어깨동무 가갸 가다가 거겨 거렇게 고교 고기잡아 구규 국끓여서 나냐 나하고 너녀 너하고 노뇨 노나먹자 사랑 지게뚱 지게뚱 지게뚱 방아야 떨껑뚱 방아야 사랑 마른논에 딱지 진논에 거머리 대문이 삐드득 나묵신 짤깍 신짝이 지르르 짚동이 푸썩 고양.. 천재동의 토우 2007.11.15
천재동의 다섯가지 ▣천재동의 다섯가지 방어진은 일찍이 일인(日人)들에 의해 신 개항지로 개척되면서 일본수산업계는 물론 자연스럽게 서구 문화에 개화된 일본의 문화예술, 의료, 금융, 세관, 극장, 운동경기, 청루, 당구장 등 오락시설이 유입되게 되었다. 경기(景氣)가 활기를 띄게 되면서 조선각지에서 일자리를 찾.. 천재동의 다섯 가지 2007.11.15